ETF 시장 블랙홀 미래·삼성, 방산·원전 이어 조선까지 싹쓸이?
원자력ETF 원조 NH아문디 300억 빠질때, 신규 미래 1300억 늘어 7월 상장 삼성 방산ETF도 업계 1위 한화 추월 삼성운용 K조선도 준비
상장지수펀드(ETF) ‘빅2’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막강한 업계 영향력을 이용, 시장 잠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상장한 두 운용사의 방산·원자력 ETF가 ‘원조’인 중소형사 방산·원자력 ETF를 밀어낸데 이어 최근엔 조선ETF까지 먹어치울 태세다. ‘상품 베끼기’를 통해 시장을 과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 (8월28일~9월29일) 미래에셋운용의 ‘TIGER 코리아원자력’ ETF는 순자산총액이 1295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한국 원자력 관련 ETF 중 가장 큰 증가 폭이다. 8월 19일 상장한 이 상품은 마이너스 수익률(누적 기준 -6.03%)을 거두고 있음에도 자금을 대거 유입하며 40여일만에 순자산 2249억원에 이르렀다.
삼성운용의 ‘KODEX K원자력SMR’이 857억원 늘어나며 뒤를 이었다. 9월 16일 증시에 입성한 신생 ETF임에도 자금이 몰리며 상장한 지 13일 만에 순자산 1000억원 규모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다음 신한자산운용의 ‘SOL 한국원자력SMR’이 139억원,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원자력TOP10’이 85억원 등의 규모로 순자산을 각각 확대했다.
반면 2022년 6월 상장한 1위 K원자력 ETF인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원자력iSelect’는 순자산이 감소했다. 감소 폭은 289억원에 달했다. 이달 들어 한국 원자력 ETF 중 유일하게 가격이 3% 이상 올랐음에도 자금 유입이 줄어든 여파다. 순자산총액으로는 3408억원으로 여전히 1위지만 2위 ‘TIGER 코리아원자력’과의 격차는 고작 1200억원이다.
방산 ETF도 상황이 비슷했다. 최근 1개월간 K방산 ETF 순자산은 삼성운용의 ‘KODEX K방산TOP10’ 519억원, ‘KODEX K방산TOP10레버리지’ 483억원, 신한운용의 ‘SOL K방산’ 55억원 등의 순으로 규모가 불어났다. 삼성운용의 두 상품은 각각 7월, 9월 상장한 신생 ETF다. 1위 K방산 ETF인 한화자산운용의 ‘PLUS K방산’은 순자산이 262억원 줄었다.
순자산총액으론 ‘PLUS K방산’(2023년 1월 상장)이 1조2343억원으로 압도적이지만 상장한 지 두 달 만에 2154억원에 이른 ‘KODEX K방산TOP10’ 저력도 만만치 않다. 2위는 미래에셋운용의 ‘TIGER K방산&우주’(2756억원)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한화운용은 8월 26일 ‘PLUS K방산소부장’, 9월 30일 ‘PLUS K방산레버리지’를 내놓으며 라인업을 강화했다.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이 방산·원자력 ETF 확대에 나선 것은 이들 업종이 국내 증시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HANARO 원자력iSelect’와 ‘PLUS K방산’ 가격은 각각 112.1%, 143.5% 올랐고 순자산도 각각 2943억원, 9015억원 증가했다. 호황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업계 1·2위 운용사가 방산·원자력 라인업을 외면하긴 쉽지 않았다.
문제는 기존 방산·원자력 ETF와 종목 비중이 다를 뿐 포트폴리오 구성이 거의 흡사하다는 점이다. ‘TIGER 코리아원자력’은 종목 15개 중 11개가 ‘HANARO 원자력iSelect’에 속한 종목이었다. ‘KODEX K원자력SMR’도 15개 중 11개가 겹쳤다. ‘KODEX K방산TOP10’는 ‘PLUS K방산’과 종목 수가 10개로 같았고 그중 8개가 동일했다.
대형사의 ‘침공’에 방산·원자력을 주력으로 한 중소형사 ETF 경쟁력은 흔들리고 있다. NH아문디운용은 ‘TIGER 코리아원자력’ 상장 이후 순자산을 2593억원을 늘리는 데 그치며 타임폴리오자산운용에 8위 자리를 내줬다. 한화운용도 ‘KODEX K방산TOP10’ 상장 직전 5위 신한운용과의 순자산 격차가 2조원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격차가 3조5000억원으로 벌어졌다.
최근엔 K조선까지 넘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KODEX K조선TOP10’ 상품을 거래소로부터 심사받는 중이다. 아직 상품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름에 ‘K조선’과 ‘TOP10’이 들어간 점을 고려할 때 거래 중인 신한자산운용의 ‘SOL조선TOP3플러스’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조선TOP10’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K조선 ETF 순자산은 ‘SOL조선TOP3플러스’ 1조6787억원, ‘TIGER조선TOP10’ 6215억원, ‘SOL조선TOP3플러스레버리지’ 1596억원 순으로 신한자산운용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그런 만큼 삼성자산운용이 ‘KODEX K조선TOP10’를 출시해 점유율을 일정 부분 뺏을 시 신한자산운용의 피해는 작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자산운용 ETF 순자산 중 ‘SOL조선TOP3플러스’와 ‘SOL조선TOP3플러스레버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가 특정 테마·섹터 ETF에서 성공을 거두면 대형사는 포트폴리오를 약간 바꾸거나 비중을 조정해 상품을 내는 경향이 있다. 중소형사가 100억~200억원 팔면 대형사는 5000억원 팔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그렇다”며 “1·2위 경쟁이 치열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운용사의 본질인 상품 혁신과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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