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도 ‘TOP’… 집중투자로 수익률 극대화 나선 운용사들
거래소 심사 중인 ETF 11개 중 절반이 집중투자형 순자산 17.8조원… 연초 이후 두 배 성장 양자컴 ETF 30% 오를 때 집중투자 66% 급등
자산운용사들이 소수 종목에 압축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최근 신규 상장 주식형ETF 4개 중 1개나 된다. 고수익 투자 수요를 흡수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NH아문디자산운용은 국내 증권주 3개를 압축 투자하는 ‘HANARO 증권고배당TOP3플러스’ ETF 상장을 앞두고 있다. 거래소로부터 심사를 받는 중이고 빠르면 28일 상장할 예정이다. 고배당 ETF 중 이름에 ‘TOP3’가 붙은 상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KB자산운용도 ‘RISE 미국고배당다우존스TOP10’과 ‘RISE 글로벌게임테크TOP3Plus’ 상장을 앞두고 위해 거래소 심사를 받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코리아AI전력기기TOP3플러스’를, 신한자산운용은 ‘SOL 미국넥스트테크TOP10액티브’를, 삼성자산운용은 ‘KODEX K조선TOP10’를 상장 준비 중이다. 상장 대기 ETF 11개 중 절반 이상이 집중 투자 ETF였다.
자산운용사들은 연초부터 이름에 ‘TOP’이 들어가고 2~10개 종목에 높은 비중을 싣는 ETF를 대거 쏟아냈다. 올해 상장한 집중 투자 ETF는 총 21개(리츠 포함)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신규 주식형 ETF(87개) 수의 4분의 1 수준이다. 집중형 ETF 신규 상장 수도 2022년만 해도 6개에 불과했으나 2023년 18개로 급증했고 2024년 19개, 2025년 현재 21개로 매년 증가세다.
자산운용사들이 집중 투자 ETF를 쏟아내는 것은 비교적 수익률이 높아 고수익 투자 수요를 흡수할 수 있어서다. 13일 기준 집중 투자 ETF 80개의 최근 3개월 평균 수익률은 14.9%로 ETF 전체 수익률 9.8%를 5%포인트 이상 웃돌았다. 순자산총액 규모도 작년 말 9조8648억원(상품 수 59개)에서 현재 17조8135억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테마별로 보면 집중투자 ETF 효과를 확인하기 쉽다. 집중투자 ETF인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의 1개월 수익률은 66.3%로 일반 ETF인 ‘RISE 미국양자컴퓨팅’ 30.5%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았다.
성과는 투자 집중도에 갈렸다.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은 10개 종목으로 구성됐고 비중도 리게티컴퓨팅(19.1%)·디웨이브퀀텀(17.3%)·아이온큐(14.9%)·알파벳(12.6%) 4개 종목에 60% 이상 쏠렸다. 반면 RISE 미국양자컴퓨팅은 구성 종목 수가 20개로 비교적 많았고 비중도 리게티컴퓨팅(12.6%)을 제외하면 모두 한 자릿수였다.
반도체 ETF에서도 집중 투자 ETF 성과가 두드러졌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한미반도체 3개 종목의 비중이 64%에 달하는 ‘TIGER 반도체TOP레버리지’(수익률 56.0%)는 반도체 종목 36개를 투자하는 ‘KODEX 반도체 레버지비’(52.5%)보다 한 달 수익률이 3.5%포인트 높았다.
AI 관련 ETF에서도 비슷했다. ‘RISE AI반도체TOP10’ 한 달 동안 29.6% 오를 때 ‘KODEX AI반도체’는 22.8% 오르는 데 그쳤다. 두 ETF 모두 SK하이닉스·삼성전자를 집중 투자하고 있으나 구성 종목 수는 10개, 18개로 거의 두 배 차이였다.
AI 소프트웨어 ETF에서도 팔란티어·피그마·오라클·앱프로빈에 집중 투자하는 ‘TIGER 미국AI소프트웨어TOP4Plus’(11.5%)가 15개 종목을 투자하는 ‘SOL 미국AI소프트웨어’(4.9%)보다 1개월 수익률이 앞섰다.
집중투자 ETF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 종목에 집중하는 만큼 급락할 수도 있다. 변동성이 크다는 얘기다. 2024년 2월 상장한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 등의 ETF는 일라이릴리·노보노디스크 2곳에 집중투자하며 상장 초반 20~30%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으나 7월 말 이후 일라이릴리·노보노디스크의 주가가 꺾이면서 이들 ETF도 하향곡선을 탔다. 13일 기준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의 1년 수익률은 –12.0%,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는 –12.5%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중투자 테마 ETF의 경우 세일즈하기 좋고 마케팅 측면에서 유리해 (운용사들이) 규제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집중투자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며 “변동성이 크고 성과가 좋았던 테마들 위주로 출시되다 보니 고점을 찍고 내려가는 경우가 있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상품이 많이 나오는 게 좋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트폴리오 헷지 차원에서 (집중투자 ETF에) 투자 비중을 두는 건 괜찮지만 마케팅에 현혹돼서 올인하거나 자주 갈아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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