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진출 물꼬 튼 바이낸스… 기대보다 우려 더 큰 이유
바이낸스, 고팍스 인수 마무리… 관리 사각지대 ‘우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 인수를 마무리하며 한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바이낸스 본사에 대한 불투명성과 고파이 예치금 미상환 문제 등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 있다.
23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바이낸스가 임원 변경 승인을 계기로 고팍스 정상화 및 한국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근 바이낸스는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의 재무 담당 인력에 대한 채용 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반영하듯 고팍스 거래대금도 최근 증가세다. 가상자산 정보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고팍스의 24시간 거래대금은 전일 대비 23.9% 늘어난 202만달러(약 28억9300원)를 기록했다. 이는 바이낸스 인수에 따른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란 업계 해석이다.
앞서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15일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의 임원 변경 신고를 수리했다. 2년 8개월 만에 바이낸스가 진행해 온 고팍스 인수의 큰 고비를 넘은 셈이다.
그러나 이번 FIU의 수리 과정에 있어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바이낸스가 해외거래소인 만큼 당국의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고팍스를 인수한 바이낸스는 최근 미국에서 사법리스크를 일부 해소했지만, 자금세탁 등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왔다. 바이낸스는 앞서 미국, 프랑스, 인도 등 주요국에서 자금세탁 방지 의무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그동안 금융 당국이 고팍스의 임원 변경 심사를 미뤄 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바이낸스는 지난 2023년엔 미국 내에서 자금세탁 위반 혐의로 43억달러(약 6조900억원)를 부과 받았다. 바이낸스 설립자 창펑 자오는 개인적으로 5000만달러(약 700억원)의 벌금을 물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또한 바이낸스가 추후 상환할 고파이 피해액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수리됐다는 점도 허점으로 지목된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20일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피해자 보상도 끝나지 않았는데 승인됐다”며 금융 당국의 승인 과정 불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이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팍스 이용자 피해가 500억~1000억원에 달하지만 아직 피해액이 전액 상환되지 않았다”며 국내 투자자 피해자를 방패 삼은 전형적인 무자본 인수합병(M&A)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상환 계획서조차 금융위원회에 제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고팍스는 지난 2022년 미국 거래소 FTX 파산 여파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 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현재 미상환 금액만 예치금에 대한 이자와 가상자산 가치 변동 등이 반영돼 14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에 바이낸스는 고팍스 인수 조건으로 고파이 피해액 전액 상환을 약속했지만,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이에 이준행 고팍스 전 대표는 지난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제 신고 수리가 이뤄졌고 더 이상 고객 상환이 지체될 이유가 없다”며 “고파이 상환은 바이낸스의 호의가 아닌 고파이 고객의 권리”라며 즉각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고팍스는 바이낸스와 고파이 상환 후속 절차를 검토 중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고파이 예치금 상환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며 “대주주 바이낸스와 협력해 고파이 예치금 상환을 위한 재원 확보 및 소액주주 동의 등 후속 절차를 단계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향후 바이낸스가 고팍스의 오더북(호가창)을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석연찮다. 현행법상 국내외에서 인허가를 받고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는 사업자와의 공유는 가능하다. 오더북은 가상자산거래소 이용자의 모든 매수, 매도 주문을 기록한 전자목록으로, 거래소간 오더북을 공유하면 유동성 확보에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문제는 이를 통해 국내 투자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더북을 공유한 해외거래소의 자금세탁 방지 체계가 미흡하면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 당국이 해외 거래소까지 통제할 수 없고, 자금 흐름과 거래 내역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고팍스와 바이낸스가 오더북을 공유하기가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행법상 해외 거래소와의 오더북을 공유는 가능하지만 금융 당국의 별도 허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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