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하는 비대면 진료… 환자·업계 모두 ‘울상’
의원급만 허용·초진 제한…팬데믹 이전으로 회귀 “거주지 규제는 현실 외면…사업 지속성 악영향”
비대면진료가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등에서의 비대면 진료가 전면 중단되고 의원급 의료기관으로만 한정되면서 제도가 후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의료공백 사태를 계기로 전면허용된지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규제로 돌아서면서 환자·업계 모두 불편과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관련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최근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해제하면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범위가 축소됐다. 이로 인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더 이상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없게 됐다. 의원급 역시 한 달 전체 진료 중 비대면 진료 비율이 30%를 넘지 않도록 제한된다.
동일 환자에게 비대면진료를 월 2회까지만 시행할 수 있고, 비대면진료 관리료도 위기 대응 시기보다 감액된다. 마약류·향정신성 약물, 발기부전제, 비만치료제 등은 여전히 처방이 금지된다. 정부는 이 조치가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위한 과도기적 정비라고 설명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사실상 제도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논란은 정부가 검토 중인 초진 제한과 거주지별 비대면진료권역 규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지역별 인구 분포를 고려해 비대면진료 가능 지역을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도권 편중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거세다.
특히 당뇨병 환자처럼 만성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은 이번 조치로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한국1형당뇨병환의 경우 온도와 시간에 민감한 생명유지 필수 약물인 인슐린을 매일 사용해야 하지만, 비대면 진료가 막히게 되면 긴급 상황에서 처방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 정부는 고혈압·당뇨병 등 비대면진료 이용 만성질환자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제한하되, 일부 대상자에 대해서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이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변경된 기준은 오는 27일부터 적용하되, 현장 혼란 등을 고려해 정부는 다음 달 9일까지 2주간 계도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비대면진료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는데다 환자 대부분이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는 점도 이번 제도 변화에 대한 불만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닥터나우’와 ‘나만의닥터’ 등 주요 플랫폼의 진료 이용 건수는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총 9만6537건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약 9600건으로, 2024년 추석 연휴 일평균 3000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진료 과목별로는 산부인과가 24.9%로 가장 많았고 내과(23.6%), 소아청소년과(22.1%), 이비인후과(7.3%) 순이었다. 증상별로 보면 알레르기·발진·여드름 등 피부 질환이 29.4%, 감기·몸살·비염 등 호흡기 질환이 17.3%, 안구건조·결막염 등 안과 질환이 7.6%로 나타났다.
더불어 환자가 위치한 지역과 진료받은 의료기관의 지역이 다른 ‘타 지역 진료’ 비율이 전체의 73%에 달했다. 명절 귀성이나 여행, 출장 등으로 타 지역에 머물면서도 기존 의사나 선호 병원을 찾는 수요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는 권역제 조항으로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도 이번 결정으로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의원급 의료기관만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들은 이용자 급감이 불가피하다. 업계는 “시범사업의 핵심이던 접근성과 효율성이 마저 무너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범사업을 축소하면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 혼란을 겪는다”며 “제도화 논의가 길어지면 관련 스타트업의 사업 지속성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