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퇴직연금인데… 고수익률로 자금 끌어들이는 증권사
3분기 증권 7.1조 유치… 은행 5.4조, 보험 1.2조 順 수익률, 증권사가 타 업권 대비 2~4%P 높아 미래 1위, 2위 놓고 삼성·한투·현대차 대결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신규 수요를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같은 금융그룹 내에서도 증권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퇴직연금이 증권사로 몰리면서 업권 내 경쟁도 치열하다. 연금 트렌드가 저축에서 투자로 바뀐 만큼 증권사로의 쏠림 현상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26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3분기 퇴직연금 적립액은 총 459조4625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인 2분기 445조6284억원 대비 13조8341억원 커진 규모다.
증가분 대부분이 증권사 몫이었다. 3분기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119조7275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7조1154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은 241조418억원으로 5조4802억원, 보험사는 98조6932억원으로 1조2385억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규 유입액이 주로 증권사로 향했거나 타 업권 연금 일부가 증권사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별로 봐도 증권사의 성장세가 돋보였다. 미래에셋증권은 3개월간 퇴직연금 적립액을 2조7860억원 늘리며 증가액 1위를 차지했다. 삼성증권이 1조5873억원 적립액을 확대하며 뒤를 이었다. 신한은행이 1조4582억원, 하나은행이 1조4043억원 각각 늘리며 3·4위에 올랐고 1조737억원 늘린 한국투자증권이 그다음이었다.
보험사 연금 ‘절대 강자’인 삼성생명은 9605억원 늘리며 1조원을 밑돌았다. 5대 은행인 NH농협은행(증가액 4985억원)은 퇴직연금을 5000억원도 확대하지 못했다. 계열사 NH투자증권(5441억원)보다 저조한 성적이었다.
증권사로 퇴직연금이 몰린 건 타 업권 대비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3분기 기준 증권사의 확정기여형(DC) 평균 수익률(원리금비보장 기준)은 평균 17.2%로 은행 15.9%, 보험사 14.9%를 크게 웃돌았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수익률 격차는 더 컸다. 3분기 IRP 평균 수익률은 증권사 16.2%, 은행 14.1%, 보험사 12.1% 순이었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수익률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진 상황도 호재였다. DC는 회사가 적립한 퇴직연금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고, IRP는 근로자 스스로 퇴직연금을 적립·운용하는 거라서 수익률에 민감하다. 여기에 퇴직연금 계좌를 옮길 때 운용 중인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계좌로 옮길 수 있도록 한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가 지난해 10월 말 도입된 점도 후발주자인 증권사에게 유리했다.
금융그룹 내에서도 '증권사' 강세
그룹 계열사 DC 상품조차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를 선호하는 양상이다.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삼성증권의 계열사 적립금은 2조5493억원으로 석 달간 5000억원 이상 늘어난 반면 삼성생명(계열사 적립금 1조3214억원)은 15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고 삼성화재(2038억원)는 오히려 50억원 넘게 빠져나갔다. 한화그룹도 한화투자증권(4034억원)의 적립금이 6월 말 이후 2000억원 이상 늘어났고 한화생명(2067억원)은 40억원 이상 줄어들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은 예·적금 중심으로 연금을 운영하고 증권사는 ETF, 펀드와 같은 실적 배당형 상품이 메인인데 현재처럼 주가가 빠른 상승세를 보일 때는 예·적금보다는 주식형 펀드, ETF처럼 적극적으로 운용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 증권사로 퇴직연금 계좌로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에 퇴직연금 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업권 경쟁도 치열하다. 미래에셋증권(적립액 34조9244억원)이 선두 자리를 굳힌 가운데 2위 자리는 혼돈 양상이다. 2분기 4위였던 삼성증권(18조8657억원)이 3분기엔 2위로 뛰어올랐다. 한국투자증권(18조6384억원)은 3위 자리를 지켰으나 ‘라이벌’ 삼성증권이 2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증권사 ‘DB형 강자’인 현대차증권(18조1389억원)은 DC·IRP에서 부진한 성과를 내며 2위에서 4위로 추락했다.
증권사에 있어 퇴직연금 사업은 금융상품 판매 경쟁력 강화, 자산관리 시장 확장 등을 통해 수익을 확대할 수 있어 앞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증권은 연금 자산 확대를 위해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빠르고 편안하게 연금을 관리할 수 있는 ‘연금 S톡’, ‘로보 일임’ 등의 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별도의 연금센터를 신설해 경력 10년 이상의 PB(프라이빗뱅커) 인력의 연금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도 MTS에서 채권 매매 서비스, ETF 적립식 자동투자,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최근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제도 변화 및 운용 전략 세미나인 ‘한투 퇴직마스터 아카데미’를 열기도 했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이로 인한 잠재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퇴직연금 사업에서의 경쟁우위 확보는 증권사들에 자산관리 역량 강화와 경상적인 이익창출력 보완의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퇴직연금 머니무브의 향방에 따라 수익 기반 및 사업 안정성이 유의미하게 개선되는 경우 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