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사업 재정비 나선 생보 빅5
제도 개편 앞두고 전담 TF·자회사 확대
국내 주요 생명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사업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생보 빅5(교보·한화·삼성·KB·신한라이프)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조직을 재정비하는 추세다. 단순 보장성 상품을 판매하던 기존 보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건강관리와 데이터 서비스를 결합한 ‘보험+헬스케어’ 모델 구축이 목표다.
28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주요 생보사들이 이달 30일부터 시행되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에 맞춰 헬스케어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 향후 시장성장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헬스케어를 신성장축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는 종신보험 사망보험금 일부를 미리 나눠 받아 노후 생활비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사망 시에만 받을 수 있던 돈을 생전에 굴릴 수 있게 돼 소비자 편익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상은 ▲55세 이상 ▲사망보험금 9억원 이하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 가입자 ▲보험료 완납 및 대출 잔액이 없는 계약자다. 확대 시행 시 대상 계약은 약 76만건, 가입금액은 35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헬스케어 사업 확장의 제도적 토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금을 현금 대신 건강관리나 요양서비스로 전환해 지급하는 ‘서비스형 지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생전 활용이 가능해지면 보험사가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의 가치가 커진다”며 “고객의 건강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상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도 긍정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4000명으로 전체의 20.3%를 차지했다. 2050년에는 40%, 2070년에는 절반 가까이가 고령층이 될 전망이다. 향후 수요 확대는 예견된 일이라는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우선적으로 삼성·한화·교보·신한·KB 등 5대 생보사가 이달 30일부터 상품을 출시하도록 지시했다. 개별 생보사 입장에서도 시장 선점에 나설 수 있는 발판으로 여겨 전면적인 사업 재편에 나선 모습이다.
교보생명은 지난 11일 원형규 전무를 헬스케어사업추진TF장으로 재선임했다. 지난해 3월 신사업 검토조직이던 ‘생보신사업연구TF’를 ‘헬스케어사업추진TF’로 개편한 이후 올해는 아예 헬스케어 사업 전력질주를 선언하고 나섰다.
원형규 전무는 2016년 교보자산운용 대표를 지낸 자산운용 전문가다. 지난해 9월 헬스케어 자회사 교보다솜케어 대표로 선임된 그는 헬스케어 TF와 자회사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교보다솜케어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본사의 헬스케어 역량을 제고할 것이란 기대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9월 헬스케어TF를 신설하고 엄성민 전무를 팀장으로 선임했다. 엄성민 전무는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 출신으로,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힌다. 2014년 CFO(최고재무책임자)에 오른 뒤 그룹 전략부문장을 거쳤다.
실제 엄 전무가 TF를 이끈 이후 한화생명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니드(Need)와 손잡고 AI 기반 ‘Need AI 암보험’을 출시했다. 니드는 2019년 미국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들이 창립한 스타트업이다. 병리·영상 등 의학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가이드라인 기반의 치료 플랜을 제안한다.
상품은 단순 진단 후 보장하는 기존 암보험과 달리 진단 전후 맞춤형 치료계획·케어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보험금 중심 상품구조에 헬스케어 프로세스를 심은 첫 사례다. 아울러 한화생명은 향후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KB·신한·교보 등 경쟁사들이 이미 별도 법인을 세운 만큼 시장 진입 시기를 조율 중이다.
삼성생명은 2021년 말부터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화했다. 당시 최인철 부사장이 전략부문장을 맡아 디지털 신사업을 총괄했던 사업을 김봉재 데이터전략팀장이 헬스케어사업부장으로 이동해 이어받았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은 헬스케어 플랫폼 ‘더헬스(The Health)’내놨다. 더헬스는 건강검진·병원·약국 이용내역과 걸음 수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건강등급을 산출하고, 암을 포함한 8대 질환 발병 위험을 예측한다. 지난해에는 수면 분석 스타트업 에이슬립과 협력해 음성 기반 수면 질 측정 기능을 추가했다.
KB라이프는 KB금융그룹 내 헬스케어 전략의 핵심 축을 맡고 있다. KB금융 계열사들과 협업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고 헬스케어 스타트업과의 제휴로 서비스를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KB라이프는 KB증권이 운용하는 ‘KB-솔리더스 헬스케어 투자조합’ 지분 4667좌(46억7000만원 규모)를 취득했다. 이 펀드는 2022년 102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투자 분야는 ▲AI 의료소프트웨어 ▲헬스케어 플랫폼 ▲항체약물적합체(ADC) 신약 분야 등이다.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면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6월에는 KB헬스케어와 손잡고 ‘KB건강매니저’ 플랫폼을 출시했다. 건강검진 결과 분석,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며 올해 3월 리뉴얼을 통해 영양제 분석과 비급여 병원비 비교 서비스를 추가했다. 비급여 항목 530여개와 전국 병원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한라이프도 요양·간병 중심에서 헬스케어 서비스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전담 법인 신한라이프케어를 세우고 최근 250억원을 증자했다. 지난달에는 보험계약자를 위한 전용 서비스 ‘신한라이프헬스케어서비스’도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고객이 질병 진단 시 간병인·가사도우미·차량 에스코트·건강식 배송·방문 재활운동 등을 받을 수 있다. 종신보험 가입자에게는 혈당측정기와 상조 지원 등 생활형 복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카카오 알림톡을 통한 건강정보 제공, 전문의료진 전화상담, 운동·영양 코칭, 건강검진 컨설팅, 심리상담 등 맞춤형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보험연구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21.8% 성장할 것”이라며 “보험사의 헬스케어 진출은 수익다각화뿐 아니라 고객생애가치(LTV)를 높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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