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제 달리는 스마트 디바이스… ‘SDV 시대’ 개막 [미래車혁신②]

코드 품질·데이터 처리 능력·알고리즘 학습 속도가 車 완성도 결정 SDV 시장 규모, 2030년 1.2조달러로 성장 전망 현대차, 2028년 완성형 SDV 선보일 것

2025-11-02     허인학 기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추구하는 미래차는 단순한 하드웨어의 조합이 아니라, 주행 중에도 업데이트되는 ‘움직이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변모하고 있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완성차 기업들은 차량 경쟁력을 소프트웨어로 정의하는 시대에 맞춰 SDV 기술 내재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차가 오는 2026년 2분기 선보일 예정인 '플레오스 커넥트'. / 현대자동차

SDV는 차량의 기능과 성능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차세대 자동차 개념이다.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파워트레인 제어 등 핵심 영역을 통합 소프트웨어 스택이 담당하며, 이는 곧 ‘차량의 운영체제(OS)’로 불린다. 스마트폰처럼 자동차라는 플랫폼 위에 소프트웨어를 더해 언제나 최신 성능을 유지하는 구조다.

SDV는 자동차 산업을 넘어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해 모빌리티의 경계를 허물 것으로 전망된다.

SDV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 & Markets)는 SDV 시장 규모가 2024년 2135억달러(약 304조7926억원)에서 2030년 1조2000억달러(약 1713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복합성장률(CAGR)은 34%에 달해, SDV가 미래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SDV 전환에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완성차 제조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이다. 그룹은 SDV를 핵심 성장축으로 설정하고 ‘소프트웨어 혁신’을 전사 전략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정의선 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정 회장은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와의 인터뷰에서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으로 SDV와 인공지능(AI)의 융합을 꼽았다. 그는 “우리는 ‘호스파워’에서 ‘프로세싱 파워’로 이동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며 “자동차는 단순히 어떻게 달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고하고 학습하며 진화하느냐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E&E 아키텍처. / 현대자동차

정 회장의 결단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차량 제어 구조를 중앙집중형으로 개편하는 E&E 아키텍처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와 자회사 포티투(42)닷을 중심으로 통합 OS와 클라우드 기반 차량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는 2026년 통합형 SDV 콘셉트를 공개하고, 2028년까지 AI 딥러닝 기반 자율주행 체계와 차량 경량화 기술을 결합한 완성형 SDV를 선보일 계획이다.

특히 그룹이 개발한 ‘아트리아 AI(Atriya AI)’는 카메라와 레이더만으로 도로 환경을 인식하는 기술로, 라이다(LiDAR) 없이도 인지·판단·제어를 통합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BMW는 ‘슈퍼 브레인(Super Brain)’을 기반으로 SDV 전환에 나섰다. / BMW

BMW도 ‘슈퍼 브레인(Super Brain)’ 시스템을 기반으로 SDV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양산될 차세대 플랫폼 ‘노이에 클라세(Neue Klasse)’에 처음 적용되는 이 시스템은 차량 내 수십 개의 전자제어장치(ECU)를 하나의 중앙 프로세서로 통합한 구조다. BMW는 이를 통해 자율주행,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 등 모든 기능을 단일 소프트웨어 스택에서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BMW는 슈퍼 브레인의 연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퀄컴(QUALCOMM)과 엔비디아(NVIDIA) 등과 협력하고 있으며, AI 기반 학습을 통해 차량 반응 속도와 예측 제어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체 개발한 AI 기반 운영체제 ‘MB.OS(Mercedes-Benz Operating System)’를 통해 완전한 데이터 중심 차량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MB.OS는 차량 센서, 주행 정보, 인포테인먼트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며, 차량 소유 기간 내내 OTA(Over-The-Air) 방식으로 지속적인 기능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최신 시스템을 자동으로 개발·전송·설치하는 완전한 디지털 업데이트 체계를 구현했다.

벤츠는 MB.OS를 통해 차량 내부 데이터를 클라우드와 연결하고, 개인화된 주행 경험과 구독형 서비스 모델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그룹 계열사 차량에 적용 가능한 통합  OS ‘VW.OS’를 개발 중이다. / 폭스바겐

폭스바겐 역시 그룹 소프트웨어 조직 ‘카리어드(Cariad)’를 중심으로 SDV 기술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카리어드는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등 그룹 계열사 차량에 적용 가능한 통합 OS ‘VW.OS’를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모든 차량을 동일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업데이트·제어할 수 있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폭스바겐은 이를 통해 반도체·소프트웨어·서비스 데이터를 통합한 ‘자동차용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해 완전한 SDV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얼티파이(Ultifi)’ 플랫폼을 통해 SDV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얼티파이는 차량 내부 하드웨어와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미들웨어 계층으로, 전자제어장치 기능을 추상화해 OTA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배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GM은 이를 활용해 자율주행 보조, 엔터테인먼트, 안전 기능을 구독형 패키지로 제공하는 ‘서비스형 차량(VaaS·Vehicle as a Service)’ 모델을 확대할 계획이다.

SDV의 대표 주자인 테슬라는 자체 OS를 기반으로 주기적인 OTA 업데이트를 수행하며, 차량 주행 데이터를 AI로 학습시켜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개선하고 있다. 특히 AI 슈퍼컴퓨터 ‘도조(Dojo)’를 통해 대규모 주행 데이터를 처리하며 완전 자율주행(FSD)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DV는 단순히 소프트웨어가 차량을 제어하는 개념을 넘어, 차량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단계”라며 “앞으로 완성차의 경쟁력은 엔진 성능이 아니라 코드 품질, 데이터 처리 능력, 알고리즘 학습 속도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