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에 밀린 농협금융지주, 농지비로 중앙회 배만 불려
농지비 제외하면 우리금융 제치고 업계 4위
NH농협금융이 상위 조직인 농협중앙회의 수익창구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 부담은 물론, 배당까지 포함하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돈이 중앙회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중앙회는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지 구체적 내역 공개를 꺼리고 있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NH농협금융의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25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여기에는 5000억원 가까운 농지비 부담이 크다. 3분기까지 농협금융 농지비는 전년 동기 대비 6.4% 늘어난 4877억원을 기록했다.
농협금융의 농지비 차감 전 누적 순이익은 2조6051억원으로 같은 기간 우리금융지주 순이익 2조2933억원를 웃돈다. ‘농지비 전’ 성적은 금융지주 중 4위지만, ‘농지비 후’에는 한 단계 밀리는 셈이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을 깎아먹은 것도 농지비 때문이었다. 농협금융은 2024년 한 해 동안 2조4537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전년 대비 11% 증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농지비로만 6111억원을 지불했다. 순익이 전년 대비 24% 늘었음에도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낮은 순익을 기록했다. 순이익 3조 원을 넘기지 못한 곳도 농협금융이 유일했다.
농지비를 제외하면 어떨까. 농협금융의 농지비 차감 전 순익은 3조648억원으로 우리금융(3조860억원)과의 격차는 200억원까지 좁혀진다.
농지비 부담은 농협금융의 성장세와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현행 농업협동조합법은 계열사 매출(또는 영업수익)의 0.3~2.5% 범위에서 농지비를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부과 기준이 ‘순이익’이 아니라 ‘영업수익’이어서 충당금 확대나 일회성 비용으로 이익이 줄어도 매출이 늘면 농지비 역시 늘어난다. 실제로 농협은행은 지난해 대손충당금 전입액과 민생지원 지출이 크게 늘었지만, 영업수익 증가에 따라 농지비 부담도 함께 늘어났다.
NH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매년 ‘농협’ 명칭 사용료 명목의 농지비를 중앙회에 납부한다. 이 구조가 누적될수록 농협금융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동일 업권 내 순위 경쟁에서도 불리해진다.
여기에 배당까지 합치면 중앙회로 넘어가는 금액은 훨씬 크다. 농협금융의 배당금은 100% 모회사인 농협중앙회로 흘러간다. 지난해 농협은행이 지급한 배당금은 8900억원, 농협금융 전체로 보면 농지비와 배당을 합쳐 약 1조5000억원이 중앙회로 이전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과도한 배당이 농협금융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훼손한다면 감독당국뿐 아니라 중앙회의 책임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직격한 이유다. 당시 금감원은 농협금융이 8개 금융지주 중 단순자기자본비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거액 배당을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농지비 인상 논의는 국회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월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농지비 부과율 상한을 현행 2.5%에서 3%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농협중앙회의 경영이다. 농지비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억대 금품수수 의혹과 보은 인사, 조합장 선거 비리 등으로 여야 의원들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
중앙회는 지난 5월 경영 위기 대응을 위해 ‘범농협 비상경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중앙회·계열사 예산의 20%를 삭감했다. 조직 안팎에서는 예산 삭감에도 계열사 부담인 농지비에 대한 개선은 없는 상황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의 지배구조 아래에서는 농지비 논란이 구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농업 지원의 실효성과 재원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주·은행의 자본력과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