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넘보는 환율… ‘달러 체력’ 시험대 오른 은행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50원까지 치솟는 등 큰 변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은행권이 외화유동성 점검에 나서는 모습이다. 아직까지는 당국의 규제 수준을 웃도는 수준이라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하지만 달러 강세가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 환율이 1500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은행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BIS비율도 동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7일 서울 외환시장 등에 따르면 전날 원화 환율은 직전일 대비 9.3원 오른 1447.0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5일 장중 1450원을 찍으며 지난 4월 11일 1457.2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뒤 1440원 선에서 등락 중이다.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는 배경에는 글로벌 달러 강세가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현재 100선을 넘어섰다. 달러인덱스가 100선을 넘은 건 지난 8월1일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위원들이 12월 추가 금리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자 강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여기에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향후 100년간 매년 최대 200억달러씩, 총 20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과 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 등의 영향도 크다. 당초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면 환율이 안정될 것으로 봤지만 효과는 단기에 그쳤다.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면 은행의 외화자산 비율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계엄 이후 4월까지 원화 환율이 1430원대에서 등락하자 4대 은행의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일제히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LCR은 각각 177.50%, 152.03%, 212.66%, 184.31%이었다가 지난 3월 146.73%, 142.78%, 204.86%, 142.28% 등으로 큰폭 하락했다.
4월 장중 1486원까지 치솟은데 이어 고환율이 지속되자 6월말 국민은행 143.40%, 신한은행 174.60%, 하나은행181.29%, 우리은행 133.26%까지 떨어졌다.
5월 이후 환율이 1300원대로 내려 앉으며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을 이유로 9월 다시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내려올줄 모르는 상태다. 은행의 LCR은 지난 9월 국민은행 151.15%, 신한은행 173.22%, 하나은행 189.29%, 우리은행 146.68%으로 소폭 개선 됐다가 10월(잠정) 기준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다.
10월(잠정) 각 은행의 LCR을 보면 하나은행이 184.90%로 가장 높았지만 전월대비 4.39%포인트 하락했다. 신한 171.01%, 국민 149.68% 등도 모두 하락했다. 우리은행만 149.72%로 조금 올랐다.
외화LCR은 은행이 30일간의 순현금유출에 대비해 보유한 고유동성 외화자산의 비율이다. 은행들의 외화 LCR이 올랐다는 것은 외환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 수준이 개선됐다는 뜻이다. LCR 하락은 반대다.
환율이 급등하면 외화조달 비용이 뛰고 기업과 개인의 외화예금 인출 압력이 커져 LCR이 낮아진다. 여기에 외화표시 자산의 원화환산액이 커지면서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자기자본비율(BIS비율)이 하락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원화 환율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4대 은행 모두 규제비율(80%)은 크게 웃돌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와 주식시장 수급 불안, 12월 중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차기 의장 지명 등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 요인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시장에서는 환율 고점을 1460원~1500원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대 은행은 모두 환율 변동성에 대한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비상 대응책이 마련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외화조달시장이 경색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 해외자산 비중이 높거나 단기 외화차입 의존도가 높은 은행일수록 달러 자금 경색의 영향을 빠르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9월 중순 이후 달러화가 대다수 통화 대비 상승하고 있는데, 시장에 단기 모멘텀이 생기면 그 흐름을 이어가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이 관성을 꺾을 만한 변수가 새로 생길 때까지)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원화 환율은 1460원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