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생산적 금융에 553조 투입… 실효성 의문도

대미투자 금액 3500억달러와 맞먹는 규모

2025-11-09     한재희 기자

금융권이 ‘생산적금융’이라는 이름 아래 500조원 이상을 시장에 공급한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합의한 대미투자 금액 전부와 맞먹는 규모다.

국내 경기 회복에 마중물이 될거란 기대도 있지만 적지 않은 돈인만큼, 자금의 쓰임새 만큼이나 은행의 건전성 관리도 걱정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정책·민간 자금이 얽히는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등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괸리될지, 민간 은행의 부실 관리가 뒤로 밀리는 거 아닌지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중 5대은행 본사 /조선DB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날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생산적 금융 전환에 각각 110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우리금융의 80조원 발표를 시작으로 하나금융 100조원, NH농협금융 108조원, 신한·KB금융 110조원 지원 계획을 내놓으며 5대 금융지주 모두 합해 총 508조원의 지원이 이뤄진다. 여기에 iM금융그룹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553조원에 이른다.

KB금융은 110조원 가운데 생산적금융에 93조원, 포용금융에 17조원을 투입한다. 생산적금융 93조원은 투자금융 25조원과 전략산업융자(기업대출) 68조원으로 공급한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5극 3특 전략’에 부합하는 지역 성장 프로젝트 발굴을 적극 추진한다. 권역별 핵심 산업과 연계되는 인프라, 신재생에너지, 데이터·AI센터, 물류·항만 등 지역 맞춤형 전략산업과 SOC 복합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포용금융 17조원은 서민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성장과 재기지원, 자산형성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지원과 채무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추진된다.

KB는 ‘그룹 생산적금융 협의회’를 중심으로 추진 방향과 실적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은행·증권·운용 등 계열사별 전담조직을 신설한다.

신한금융은 ‘신한 K-성장! K-금융!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총 110조원을 공급한다. 9월 신설된 ‘생산적 금융 PMO’를 중심으로 유망산업 발굴–자본 영향도 분석–성과 모니터링까지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한다. 국민성장펀드 10조원, 그룹 자체 투자 10~15조원, 일반 중소·중견기업 대출 72~75조원을 통해 반도체·에너지·지역 인프라 등 국가 전략산업을 폭넓게 지원한다.

하나금융은 그룹 차원의 ‘경제성장전략 TF’를 신설해 2030년까지 생산적 84조원, 포용 16조원 등 총 100조원을 집행한다. 국민성장펀드 10조원 선제 참여, 모험자본 2조원, 민간펀드 결성 6조원, 첨단산업 1조7000억원, 지역균형 3000억원 등 자체 투자와 더불어 기술기업·수출 중소기업 대상 대출(50조원), 공급망 강화 금융(14조원)을 병행한다.

우리금융은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생산적금융 73조원, 포용금융 7조원을 투입한다. 지주 차원의 ‘첨단전략산업금융 협의회’와 은행 내 전담조직을 신설해 리스크를 상시 점검하고, 국민성장펀드 10조원, 자체 투자 7조원 외에도 K-Tech 19조원, 지역 첨단산업 16조원, 벤처 11조원, 수출기업 7조원 등 총 56조원의 융자를 세분화했다.

NH농협금융은 회장 직속 ‘생산적금융특별위원회’ 산하에 모험자본·투융자·국민성장펀드 3개 분과를 두고, 생산적 93조원·포용 15조원 등 총 108조원을 투입한다. 농업·농식품 기업 전용 펀드와 정책자금 연계를 통해 농업금융의 역할을 강화하고, 농업·유통·식품 기업 중심의 산업금융망을 구축한다.

iM금융그룹은 지역 특화형 모델로 5년간 생산적금융 38조5000억원, 포용금융 6조5000억원 등 총 45조원을 공급한다. 대구·경북 등 전략산업 중심으로 ‘피움랩’을 고도화해 발굴–컨설팅–투자–대출을 잇는 통합 솔루션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이자장사’를 공개 비판하면서 대출 영업이 아닌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기업 지원 등 금융 패러다임 변화를 주문한 결과다. 

일각에서는 금융권의 대규모 지원이 어느정도 실효성을 가질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정책금융 성격의 국민성장펀드와 민간의 자체투자가 동시에 투입되면서, 동일 프로젝트에 펀드·모펀드·대출이 겹겹이 얹히는 구조적 중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당국이 지주별 실적을 점검하더라도, 개별 기업 단위의 자금흐름까지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경기 둔화 국면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만큼, 한도·금리 우대보다 사전심사·사후모니터링 체계 정교화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생산적 금융’이 민간 금융회자의 건전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금흐름 점검, 코버넌트(약정조건)·얼리워닝 체계 같은 위험관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산업 육성 취지는 타당하지만 민간 금융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신용평가와 리스크 관리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특히 대출과 투자 지원 등은 건전성 확보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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