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뗀 엔씨··· 김택진標 ‘넥스트 컴퍼니’ 2막 연다

2025-11-09     천선우 기자

엔씨소프트가 창립 28년 만에 엔씨소프트라는 사명에서 ‘소프트’를 뗀다. 창립자 김택진 대표의 초기 철학처럼 AI 사업 확장, 글로벌 게임사 도약 등 다음 스텝을 이어가기 위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 엔씨소프트

9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현재 사명 변경을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사명 변경안이 확정되면 내년 초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초기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라는 의미와 현재의 기업 이미지가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엔씨는 AI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기존 이름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통일성과 정체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해외 계열사와 브랜드를 일원화해 글로벌 인지도와 이미지 제고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엔씨는 과거 음원 서비스, 플랫폼,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 기반의 여러 사업을 전개했지만, 최근 몇 년간 비주력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했다.

업계에서는 이 선택과 집중이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가 지난해부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는 게임과 AI 두 축에 조직과 자원을 집중하며 비용 효율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우선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명 변경은 특히 글로벌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춰 미래지향적 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로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엔씨소프트 R&D 센터. / 엔씨소프트

뼈를 깎는 쇄신, 반등의 기회로

업계에선 이 같은 변화가 김택진 대표의 창립 당시 비전 ‘Next Company(미래를 이끄는 회사)’라는 초심을 재정립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김택진, 박병무 공동대표가 올해 초 신년사로 내걸은 키워드는 미래 도약을 위한 ‘쇄신’이였다.

두 대표는 당시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일들을 진행했다. 뼈를 깎는 각오로 2025년에 엔씨를 턴어라운드 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면서 구성원들에게 원팀(One team)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엔씨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적 부진으로 회사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25년은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엔씨는 조직 개편을 단행해 세 개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신설하고, AI 전문 자회사 ‘엔씨AI’를 출범시켰다. 슈팅과 서브컬처 장르에 이어 모바일 캐주얼 센터를 신설하며 외연도 확장했다. 동시에 전체 인력을 5000명에서 3000명대로 줄여 수익성 중심의 체질을 강화했다.

뼈를 깎는 쇄신 작업은 턴어라운드로 이어졌다. 엔씨는 지난해 하반기 적자 흐름을 끊고 올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분기에는 레거시 IP가 견고하게 버티며 외형 성장을 이뤘다.

이러한 노력으로 시장 신뢰를 점진적으로 회복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하락세를 이어온 주가는 올해 4월 52주 최저가인 13만7000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현재 22만원대까지 회복됐다. 별도 신작 없이 비용 효율화와 기존 라이브 게임만으로 ‘V자 반등’을 이뤄낸 것이다. 신작 성과에 따라 주가 변동이 큰 게임주 특성상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왼쪽)와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 엔씨소프트

글로벌 게임사 ‘제2의 도약’ 목표

업계는 엔씨의 변화를 단순한 행보 전환 이상으로 보고 있다. 엔씨는 지스타 2025에서 처음으로 메인스폰서를 맡으면서 이용자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구조조정 이후 2년 만에 공개 채용을 재개한 것도 공격적 경영 기조의 신호로 해석된다.

엔씨는 전 산업의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가대표 AI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는 엔씨AI는 게임을 넘어 패션·교육·금융 등 여러 산업군에 특화된 ‘버티컬 AI’ 솔루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부적으로는 게임 제작 효율화, NPC 행동 모델링 등 엔씨의 핵심 IP에 적용되는 기술로 발전시키고 있다.

게임 본업 강화 전략도 본격화됐다. 엔씨는 ‘리니지 라이크’ 중심의 내수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 저변 확대를 목표로 라인업을 재편하고 있다.현재 해외 성공 사례는 대만의 ‘리니지’ 시리즈와 북미의 ‘길드워’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분기 매출 비중은 국내 64%, 아시아 18%, 북미 6.9%로 지역별 편차가 크다.

엔씨의 전략 핵심은 MMORPG 강점을 유지하면서 비(非)MMORPG 장르로 외연을 넓히는 데 있다. 신작 라인업만 봐도 중복되는 장르가 없다. 11월 19일 MMORPG ‘아이온2’를 시작으로, 내년 1분기 ‘리미트 제로 브레이커스’, 2분기 ‘타임테이커즈’, 2026년 중 ‘신더시티’ 등 총 7종의 타이틀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며 글로벌 공략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업계에선 엔씨가 BM(비즈니스 모델) 개편과 서구권 타깃의 다수 신작을 통해 회사가 제시한 2026년 매출 목표(2조~2조5000억원)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엔씨는 경영진의 쇄신 의지에 따라 작년부터 올해까지 정비의 시간을 가져왔다”며 “하반기 아이온2를 필두로 다양한 신작 성과에 따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외형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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