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국채토큰 2년새 12배 커졌는데… 韓, 아직도 논의만
23년 7.5억弗 규모 현재 94억弗로 커져 美국채토큰이 전체 90% 차지
글로벌 국채토큰 시장 규모가 100억달러에 달하는 등 디지털자산의 새로운 투자 열기가 뜨겁다. 디지털자산 생태계에서 금융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만큼 합리적 규제체계 마련이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공회전만 계속되고 있다.
13일 블록체인 분석 사이트 RWA.xyz에 따르면 전날 기준 글로벌 국채토큰 시가총액은 94억1838억달러(약 13조8200억원)로 작년 말(39억7355만달러) 대비 137% 커졌다. 2년 전(7억5368만달러)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12배가 넘는다. 이 중 미국 국채토큰이 83억7860만달러로 전체 89.0%를 차지했다.
상품별로 보면 미 단기 국채를 중심으로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BUIDL’가 25억2339만달러로 가장 컸다. 써클의 ‘USYC’가 9억8548만달러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 프랭클린템플턴의 ‘BENJI’ 8억4490만달러, 온도의 ‘OUSG’ 7억8427만달러 및 ‘USDY’ 6억9081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이들 상품 모두 미 단기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국채토큰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토큰증권 중 하나다. 실물 국채 권리를 디지털화해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도록 했다. 토큰증권 기초자산 중 사모대출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국채토큰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이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과 함께 토큰화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국채는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금리와 자산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에 높은 신용도와 유동성 덕분에 금융거래에서 담보로도 널리 쓰인다. 이런 이유로 국채토큰도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기존 국채처럼 신뢰와 안정성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토큰화 시스템에선 거래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채토큰 역시 디지털 담보용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담보의 적격성 판단과 가치 평가, 이전 절차가 자동으로 이뤄지면서 국채토큰은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달러화 지배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국채토큰을 활용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등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국채토큰을 적극적으로 발행하도록 유도해 미국 국채의 수요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홍콩은 2023~2024년 두 차례 총 68억홍콩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국채토큰을 발행했다. 동유럽 국가 중 블록체인 산업이 비교적 발달한 국가로 알려진 슬로베니아는 지난해 유럽연합(EU) 국가 최초로 3000만유로(약 510억원) 규모의 4개월 만기 국채토큰을, 룩셈부르크는 올 6월 5000만유로 규모의 6개월 만기 국채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영국은 올 5월 디지털 국채 시범사업을 계획했고 같은 달 태국도 디지털 형태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인 ‘G-토큰’을 승인했다.
각국이 디지털 시대에 대비해 국채토큰에 힘을 쏟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2023년 2월 토큰증권 발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이에 필요한 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토큰화라는 게 유용성(유틸리티)을 가지고 있어 자본시장 효율성 측면에서 굉장히 높아 미래의 전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법안을 기반으로 토큰증권을 활성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디지털자산 생태계 조성 방안을 마련하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규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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