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놓고 치킨게임?… 삼성, HBM3E 가격 낮춰 SK하이닉스 견제

2025-11-13     이광영 기자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두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점유율 확보를 위한 ‘치킨게임’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절실한 쪽은 점유율이 10%대로 쪼그라든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한 1위 SK하이닉스로부터 물량을 뺏어오기 위해 가격 인하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13일 반도체 업계에 공개된 골드만삭스 최신 메모리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등 고객사로 공급 확대를 위해 5세대 HBM(HBM3E) 가격을 추가 인하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는 현재 삼성전자의 HBM3E 가격이 SK하이닉스보다 5%쯤 낮은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전자는 HBM3E 공급 물량 확대에 맞춰 2026년에 월 16만장 이상의 HBM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가격 인하 정책으로 삼성전자는 내년 중 35%의 점유율 회복을 노린다는 목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HBM3E 가격이 엔비디아의 인하 압박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 구도로 인해 전년 대비 28% 하락(15달러/GB→10달러/GB로)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은 2026년부터 엔비디아 공급이 예상되는 6세대 HBM(HBM4)의 존재 때문이다. HBM4는 엔비디아가 2026년 하반기 공개 예정인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에 탑재되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 업계 최초로 10나노미터(㎚)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하며 경쟁사 대비 성능 우위를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HBM4용 1c D램은 콜드 테스트에서 50%에 가까운 수율을 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콜드 테스트는 극저온 환경에서 칩을 동작시켜 회로의 전기적 특성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신뢰성 시험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월 31일 경주 APEC CEO 서밋이 개최된 경주아트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감사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링크드인

IT팁스터 주칸로스레브(@Jukanlosreve)는 11일 엑스(X)를 통해 “HBM3E 대비 40% 높은 HBM4의 가격 프리미엄과 출하량 증가가 가격 하락 영향을 부분적으로 상쇄할 것”이라며 “선도 기업의 내년 HBM 사업 매출은 여전히 전년 대비 20~30%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도 HBM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며 시장 점유율 방어에 나선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월 HBM 생산능력(14만5000장)을 2026년 19만5000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2026년 말에는 D램 제품의 절반쯤을 1c D램 공정으로 생산할 방침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엔비디아와 가격·물량 등을 포함한 HBM4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납품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하고 공급 시점을 조율 중이다.

한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각) 대만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최첨단 메모리 샘플을 받았다”고 밝혔다. 황 CEO가 언급한 샘플은 ‘HBM4’로 추정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