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에도 부족한 RSV 백신… 수요 집중된 원인은?
연내 소아용 RSV 백신 공급 부족 해결되지 않을 듯 고령층 RSV 백신 접종률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 중 “감염병 불안과 예방의식이 맞물린 새로운 소비현상”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이 1회 40만~60만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접종 희망자가 몰리면서 일부 병·의원에서는 예약이 조기 마감되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NMC)은 현재 소아용 RSV 백신 ‘베이포투스 1㎖(100㎎)’의 접종 예약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의료원은 공지문을 통해 “제약사 공급이 중단돼 예방접종 예약을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등포에 위치한 ‘S 소아청소년과의원’ 역시 전화문의한 결과 RSV 백신 공급 부족현상으로 당분간 예약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영유아용 예방 단클론항체 ‘베이포투스(성분명 니르세비맙)’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가 지난 2월 국내에 출시한 베이포투스는 2024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올해부터 전국의 신생아·영아를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RSV에 대한 공포와 예방의식이 결합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폭발하는 전형적인 ‘프리미엄 백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에서 RSV는 주로 생후 6개월 미만의 영아나 고령층에서 폐렴과 세기관지염을 유발해 입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RSV 입원 환자는 코로나19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영아의 경우 호흡기 감염으로 인한 병상 부족 사태가 반복되면서 부모들의 불안감이 크게 높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도입된 베이포투스는 한 번 접종으로 5개월 이상 RSV 감염을 막을 수 있어 ‘한 시즌 안심 주사’로 불린다. 기존 고위험군 영아에게 월 1회씩 맞혀야 했던 팔리비주맙 대비 효율성이 높아, 부모들이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접종을 택하고 있다.
사노피가 개발한 RSV 예방 항체 주사 베이포투스는 올해 2월 50㎎과 100㎎ 두 가지 용량으로 출시됐다. 50㎎은 체중 5㎏ 미만 영유아에게, 100㎎은 5㎏이상 영유아 및 소아에게 접종된다.
이 중 공급이 중단된 품목은 100㎎이다.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감염 사례가 급증하면서 ‘무조건 맞히고 싶다’는 문의가 늘었다”며 “비급여임에도 백신이 입고되면 순식간에 소진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내 베이포투스 100㎎ 추가 공급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이다. 사노피 관계자는 “베이포투스 50㎎은 정상 유통되고 있지만 100㎎은 접종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일부 지역 및 의료기관에서 일시적인 재고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며 “베이포투스 100㎎의 연내 추가 수입 및 공급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나, 최대한 빠른 시기에 추가 수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높아진 예방의식도 수요 폭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고령층 대상 RSV 백신(아렉스비) 역시 출시 직후부터 접종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노년층 사이에서 인플루엔자·코로나19·RSV 백신을 동시에 맞는 ‘3종 접종’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하나뿐인 아이를 지키겠다’는 부모들의 과잉보호 심리도 더해졌다. 저출산으로 아이 한 명당 투자 비용이 커지면서, 감염 예방을 위한 고가 백신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예방접종이 단순한 의학 행위가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 사랑을 상징하는 문화적 행위로 인식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점도 ‘희소성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2024년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베이포투스 품귀 사태가 발생했으며, 제조사인 사노피와 아스트라제네카는 “생산라인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병·의원에 공급되는 물량이 제한돼 있으며, 일부 의료기관은 예약 대기 명단을 운영 중이다.
국내 접종비는 병원마다 다르지만 평균 45만~60만원선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RSV 감염으로 입원할 경우 치료비가 수십만~수백만원에 이르고, 산소치료·입원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방의 경제성이 높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과 체계적 수급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한소아감염학회 관계자는 “RSV는 독감처럼 매년 반복되는 계절성 질환이므로, 백신과 항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고위험군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국가예방접종사업(NIP) 편입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결국 RSV 백신 수요 집중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감염병 불안과 예방의식이 맞물린 새로운 소비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싸도 맞겠다는 부모들의 선택은 건강 불안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정부는 이를 시장 신호로 보고 예방정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