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르쿤, 왜 메타를 떠났나 [윤석빈의 Thinking]
인공지능(AI) 업계가 거대한 충격에 빠졌다. 메타(Meta) AI의 상징이자 '오픈소스 AI의 전도사'로 불리던 얀 르쿤(Yann LeCun)이 전격 사임했다.
튜링상 수상자이자 딥러닝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그의 퇴장은 단순히 한 명의 스타 과학자가 회사를 떠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메타가 그동안 견지해 온 '개방형 AI(Open Source AI)' 전략의 근본적인 균열이자, AI 산업 전체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운 학술적 도전에 집중하기 위함"일 수 있다. 하지만 업계가 주목하는 이면의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고 전략적이다. 르쿤의 사임은 크게 세 가지 핵심적인 '충돌'의 결과로 분석된다.
첫째, '상업화의 딜레마'다.
얀 르쿤은 AI 기술의 민주화를 위한 '개방성'을 제1의 신념으로 삼아왔다. 메타가 라마(Llama) 모델을 오픈소스로 풀어버린 결정적 배경에도 그의 철학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이는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생태계 확산을 우선한 전략이었으며, 구글, 오픈AI 등 폐쇄형 모델 진영에 맞선 메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오픈AI는 GPT 시리즈와 챗GPT를 통해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앤트로픽, 구글 등도 폐쇄형 모델을 기반으로 B2B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메타의 주주들과 이사회는 "왜 우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AI 모델을 경쟁사들이 마음껏 활용하도록 무료로 풀어놓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수익화 압박이 거세지면서 메타 내부에서는 라마의 차기 모델부터는 라이선스를 강화하거나, 핵심 기술은 내부화(Internalize)해야 한다는 '폐쇄형 전환'의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이는 르쿤의 신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개방'을 통한 생태계 구축이라는 명분과 '폐쇄'를 통한 즉각적인 수익 창출이라는 실리 사이의 충돌이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둘째, 'AGI 로드맵'에 대한 비전 충돌이다.
얀 르쿤은 현존하는 LLM(대형 언어 모델)의 한계를 꾸준히 지적해 온 인물이다. 그는 텍스트 데이터 학습만으로는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으며, 인간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AGI(일반인공지능)를 위해서는 '세계 모델(World Model)'에 기반한 새로운 아키텍처(그가 주창한 JEPA 등)가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반면, 시장의 경쟁은 '규모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오픈AI의 GPT-5(가칭)와 경쟁해야 하는 메타의 입장에서는 르쿤의 장기적인 비전보다는 더 많은 파라미터와 더 많은 데이터를 투입해 즉각적인 성능 향상을 보여주는 거대언어모델(LLM) 고도화가 더 시급한 과제였을 수 있다.
연구개발(R&D) 리소스 배분을 두고, '단기 LLM 경쟁력 강화'와 '장기 AGI 비전 연구' 사이의 갈등이 격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르쿤의 입장에서 자신의 핵심 연구 비전이 메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회사가 단기적인 LLM 경쟁에만 매몰되는 모습은 그가 더 이상 메타에 남을 이유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얀 르쿤의 사임을 추동한 세 번째이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안전과 규제의 역설'이다.
얀 르쿤은 'AI 종말론(AI Doomerism)'에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온 과학자다. 그는 AG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공포이며, 진짜 위험은 AI 기술이 소수의 거대 기업에 독점되는 '권력의 집중'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리고 그 '독점'을 막을 유일한 해법이 바로 '오픈소스'라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 의회와 EU를 중심으로 한 각국 정부의 AI 규제 움직임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안전'을 명분으로 한 규제론자들은 강력한 AI 모델의 '통제'를 요구했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장치'란 사실상 오픈소스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폐쇄적 관리'를 의미했다. 메타는 이 거대한 규제 압박의 한복판에 섰다. '오픈소스'라는 이유로 규제 당국의 집중 타깃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마크 저커버그와 이사회는 정부 규제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전'이라는 명분하에 모델의 개방성을 포기하고, 정부의 통제 프레임워크를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 르쿤에게 이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다. '안전'을 빌미로 AI의 민주화가 후퇴하고, 결국 소수의 승인된 기업(오픈AI, 구글 등)만이 AI 개발을 독점하게 되는 '규제에 의한 과점(Regulatory Capture)'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통제'가 아닌 '개방'이야말로 진정한 안전장치라고 믿었기에, 규제에 굴복한 메타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픈 AI' 시대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전장
얀 르쿤의 사임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다. 이는 메타가 '오픈소스'라는 깃발을 내리고, 오픈AI와 구글이 주도하는 '폐쇄형 상업주의'와 '규제 순응주의'의 길로 합류함을 시사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AI 산업은 이제 명확히 두 개의 축으로 재편될 것이다.
첫째는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그리고 이제 메타까지 합류한 '폐쇄형 거대 제국'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안전'과 '라이선스'를 무기로 AI 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둘째는 허깅페이스(Hugging Face), 미스트랄(Mistral AI) 같은 스타트업과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로 구성된 '개방형 저항군'이다. 얀 르쿤은 아마도 이 저항군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새로운 연구소나 재단을 설립해, 빅테크의 상업적·규제적 압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개방형 AGI'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리에게도 이 사건은 심각한 경고를 던진다. 그동안 '라마'라는 강력한 오픈소스 생태계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던 국내 AI 기업들은 이제 '플랜 B'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메타라는 거대한 우군이 사라진 지금, 'K-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독자적인 기술력과 생태계 구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얀 르쿤의 퇴장은 AI의 영혼을 건 '개방'과 '폐쇄'의 전쟁이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서곡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파도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분석과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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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