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단위 잉여금 불구, 배당 못하는 보험사들… 내년엔 달라지나
이억원 금융위원장 “적립 방식 합리화 검토” “제도 개선 시 내년 배당 가능”
코스피 4000선을 넘어서는 등 국내 증시가 호조를 보이자 상장사 배당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도 금융당국의 관련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면서 그간 중단됐던 보험사 배당이 내년부터 재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도 제도 손질이 현실화되면 상장 보험사들이 다시 주주환원에 나설 여력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9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연내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 개선을 목표로 구체적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르면 연내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배당을 하지 못한 주요 보험사들도 배당 여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보험계약자가 중도 해지할 경우 돌려줘야 하는 금액을 미리 적립해 두는 제도다. 보험사가 만에 하나 계약자의 해약환급을 돌려주지 못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적립 재원이 보험사의 이익잉여금에서 직접 차감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익잉여금은 보험사가 배당에 활용하는 배당 원천인데, 적립해야 하는 준비금이 커질수록 배당 가능 재원이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특히 보장성보험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해온 보험사일수록 준비금 적립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일부 회사는 이익잉여금 절반 가까이가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잡히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연간 1조원 안팎의 순익을 내고도 실제 배당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지난해 상장 보험사 11곳 가운데 삼성생명·삼성화재·DB손해보험·코리안리 등 4곳만 배당을 실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23년 만에 배당을 중단했고, 한화생명도 지난해 배당을 하지 못했다. 한화손보도 2023년 5년만에 배당을 재개했지만 지난해 중단했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보험사 배당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한화생명의 올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잠정 규모는 5조3810억원으로 2024년 말 3조6312억원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해상도 2023년 9월 3조6039억원에서 올해 3분기 4조495억원으로 확대되면서 보험업권 전반적으로 준비금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새 회계제도(IFRS17) 체제에 맞춰 2023년 이후 신규 계약의 경우 준비금 적립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 계약은 이미 CSM(보험계약마진)을 통해 가치 평가가 끝난 만큼, 동일 계약에 대해 또다시 대규모 준비금을 쌓는 것은 제도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봐서다. 업계는 이 방안이 반영될 경우 내년 배당가능이익이 약 5조원 늘고, 정부의 법인세수도 2조5000억원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협회도 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앞서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은 “해약환급금준비금은 해외에는 없는 제도”라며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 가입자 보호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배당 등 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부합하도록 개선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는 보험사 실무진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김동희 한화생명 재정팀장은 지난 14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생명보험협회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지속 건의해 왔다”며 “긍정적 방향으로 제도가 손질된다면 2025년 배당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이 회사의 배당 정책과 직결된 사안임을 강조한 셈이다.
금융위 역시 제도 개선 관련 논의가 필요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보험업권 CEO 간담회에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방식의 합리화를 검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 적용 시기와 개선 폭을 두고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르면 연내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한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금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시사한 점은 긍정적으로 향후 관건은 개선 적용 시기와 개선 폭이 될 것”이라며 “큰 폭의 제도 개선이 현실화될 경우 단기간 내 배당 재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