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앞세운 마이리얼트립… “개발·비개발 경계가 사라졌다”
구자문 마이리얼트립 최고기술책임자(CTO) 인터뷰
기업은 AI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다시 짜고 있다. 개발자 중심이던 AI 활용은 이제 비개발직군으로까지 확산됐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도 조직 문화를 통째로 바꾸며 전직원의 AI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직원 AI 활용을 일상 업무로 확장
마이리얼트립은 조직 내부의 업무 방식부터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본격화했다. 그 시작은 AI랩이다.
마이리얼트립은 지난해 일종의 내부 컨설팅 조직으로 ‘AI랩’을 만들었다. AI랩은 경력이 많은 개발팀장급의 개발자들이 AI 관련 사례 연구 등의 업무와 다른 임직원 대상 AI 활용 역량 교육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구자문 CTO는 AI랩 초기에는 “이 업무 자동화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방식은 구성원 AI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AI랩이 개발 외주처럼 느껴졌다. 구 CTO는 “AI랩이 자문만 하고 구성원이 스스로 일을 진행하다 막힐 때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기에는 AI 적용 속도가 느렸지만 지금은 조직적인 AI 활용 역량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리얼트립은 AI랩과 함께 직무 확장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개발자뿐 아니라 조직장도 참여한다. 구 CTO 자신도 첫 번째 기수로 참여해 백엔드 출신임에도 안드로이드 관련 강의를 들었다.
그는 “직무 확장은 개발 감각과 안목을 키우는 교육이다”라며 “그래야만 AI 코드 에이전트 같은 도구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발 문법은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AI로 만든 결과물을 합쳐 제품을 구성하는 과정은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가동된 지 1년이 지나자 실제 업무가 바뀌었다. HR팀은 채용 페이지를 변경할 때 개발팀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수정한다. 6개월치 항공가를 탐색하거나 도시별 최저가를 검색하는 건 자동화 시스템이 대신한다. 그는 “과거에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8명은 모여야 했지만 지금은 4명 정도면 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직무를 익히는 구성원과 AI 생산성 향상이 맞물리면서 시너지가 생긴 것이다.
AI 역량 강화는 시장의 요구
구자문 CTO는 이런 변화가 시장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성장하는 AI에 적응해야 살아남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5년차 이하 개발자를 채용하는 것보다 AI 코딩 에이전트를 쓰는 것이 더 저렴하고 빠르다는 점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경력 개발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량을 AI 발전 속도에 맞춰 키워야 한다.
마이리얼트립이 개발직군명을 ‘프로덕트 엔지니어’로 바꾸고 다양한 분야 교육을 강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 CTO는 AI랩과 AI 교육을 시작할 때 구성원 반발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분야만 할 줄 아는 직원이나 AI를 못 쓰는 직원은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이리얼트립은 전직원 AI 역량 강화로 팀 간 의존도(Dependency)를 줄여 업무 효율과 속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업개발 부서가 ‘몽골 사막투어’ 같은 상품을 기획하면 관련 기능 조직 9~10명이 모여 회의해야 했지만 지금은 사업개발 조직과 개발 조직이 하나의 목적 조직으로 묶여 소통 속도가 빨라졌다.
사업 고도화도 AI 역량에서 출발
마이리얼트립은 전직원 AI 활용 역량을 본 사업 고도화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행 과정에서 고객이 겪는 문제를 직군 구분 없이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접근이다. 구 CTO는 개발자도 고객의 문제를 직접 찾고 해결책을 만들고 구현한 뒤 실제 개선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자라고 요청만 받고 코딩하고 끝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능 구현이 주 업무인 건 변함없지만 문제 파악과 해결까지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이리얼트립이 프로덕트 엔지니어 직군을 만들고 AI랩과 직무 확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목표는 사업 고도화다.
구자문 CTO는 “개발조직이 고객 문제를 빨리 해결할수록 여행자의 서비스 이용 경험도 더 빠르게 개선된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가 두렵지 않다면 이런 실험과 여정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00명 가까운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주도적으로 고객 문제를 해결하면 수십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과 같다”며 “이 역량이 결국 마이리얼트립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