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조기유행에 깜짝 놀란 보험사… 서둘러 보장 축소 '꼼수'

질병관리청, 이달 2~8일 독감 의심 외래환자 1000명당 51명 보험사, 독감 청구 폭주에 보장한도 ‘축소’ 기조

2025-11-21     전대현 기자

독감 유행이 급격히 퍼지면서 일부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다. 예년보다 이른 시점에 독감 환자가 폭증하자 보험사도 주판을 다시 두드리는 모습이다. 보험금 지출이 당초 전망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정비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이다.

19일 서울 한 어린이 전문병원에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 뉴스1

21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 19일 독감보험 치료비 특약 보장 한도를 축소했다. 일반 건강보험 상품의 경우 기존 20만원을 지급하던 것을 이날부터 10만원으로 축소했다. 마이슈퍼스타건강보험·내돈내삼1640건강보험 등 자녀 건강보험 상품도 한도를 20만원에서 3만원으로 줄였다. 

삼성생명도 독감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그간 삼성생명은 타사와 달리 독감보험에 최저보험료 규정을 두지 않고 있었다. 삼성생명은 대신 20일부터 독감보험 가입 시 6개월치 보험료 선납 조건을 달았다. 단기 청구 후 해지 하는 가입자의 모럴헤저드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생손보 1위 보험사들이 독감보험 문턱을 높이고 있는 다른 보험사들도 조만간 뒤따를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이는 독감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데 따른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달 2~8일 전국 표본감시 의료기관에서 확인된 독감 의심 환자는 외래환자 1000명당 50.7명이다. 직전 주(22.8명)보다 122% 급증했다. 강남 대치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항바이러스제 품절이 이어지고 소아청소년과 대기시간이 크게 늘면서 독감보험 청구도 단기간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독감보험은 독감 확진 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으면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형 구조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은 가입 직후 청구를 막기 위해 3~10일 등 면책기간을 두기도 한다. 월 보험료는 대체로 2000~3000원 수준이다.

독감보험은 2020년 처음 출시됐을 당시에도 보장한도가 20만원 수준이었다. 이후 독감 유행이 거세지던 2023년에는 일부 손보사가 100만원까지 보장을 확대하며 경쟁이 과열됐다. 가입 직후 보험금을 받고 해지하는 방식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번지며 모럴해저드 논란도 커졌다.

과당경쟁을 우려한 감독당국이 고액 보장 경쟁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독감보험 치료비 한도는 20만~30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독감 유행이 예년보다 두 달 앞당겨 시작되면서 한도가 10만~15만원 선으로 축소되는 모습이다. 

보험사들이 독감보험 한도 조정에 나선 데는 실적 부진에 따른 영향도 있어 보인다. 최근 보험사들은 이번 3분기 보험손익 부문이 일제히 나빠졌다. 의료파업 종료 이후 병원 진료가 늘며 장기보험 중심으로 보험금 지급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독감보험 역시 유행기마다 청구가 집중되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보험사 손해율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병건 D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보험사들의 본업 부진에 대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쉬운 상품을 공격적으로 판매한 영향이 있다”며 “연말 일부 회사는 CSM(보험계약마진) 잔액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당국도 2023년부터 독감보험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금감원은 당시 “과도한 보장 경쟁은 초과이익을 기대한 가입을 부추겨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보험료와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거 고액 보장 상품들이 일부 유지되고 있는 만큼 유행기에 손해율이 급격히 치솟을 수 있다는 점도 금융당국이 염려해온 핵심 사안이다.

한편, 독감 치료비 보장 한도 축소를 의식해 소비자들이 서둘러 상품을 가입하는 것은 피해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약제 처방 기준이나 면책기간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서다. 실제 독감확진 질병코드는 J09~11, 보장하는 약제도 ▲오셀타미비르 ▲자나미비르 ▲페라미비르 ▲발록사비르 등 제한적이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