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답은 산업 전환(AX)이다 [기고]
기술 확보의 함정, 답은 ‘산업 전환’
전 세계가 ‘소버린 AI’ 경쟁에 뛰어들면서 우리나라도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6년까지 세계 수준의 모델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분명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그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기술 확보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들여 개발한 ‘한국형 OS’는 시장과 생태계를 고려하지 못해 외면 받았다. 반면 LG의 웹(web)OS는 스마트 TV라는 명확한 도메인에 집중해 전 세계 2억 대 이상에 탑재됐고, 광고·콘텐츠만으로도 연 1조 원 이상의 플랫폼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산업과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응용에서 시작하는 순환적 기술 발전 구조
웹OS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의 가치는 응용에서 실현된다. AI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추진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은 2026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그 시점이면 지금의 성능 기준은 이미 구식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는 모델을 먼저 만든 다음 응용을 붙이는 선형적 접근으로는 기술 개발도 늦고 응용도 늦어져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고체인(Chain of Thought)’이다. 원래는 복잡한 질문을 단계별로 분해해 답변의 정교함을 높이던 응용 단계 기법이었지만, 최신 모델에서는 이 기능이 내부에 통합되어 자동으로 심층 추론을 수행한다. 현장에서의 필요가 모델을 개선하고, 개선된 모델이 다시 새로운 응용을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이 순환은 산업 적용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실제 데이터와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문제 정의가 기술 개발의 방향을 만들고, 이렇게 고도화된 기술이 다시 산업 전환을 가속한다.
인프라 확충이 만들어내는 산업 전환의 토대
이 순환 구조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 주도로 엔비디아가 국내에 26만 개 규모의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결정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는 단순한 연산 자원 확보가 아니라 산업 전환을 위한 실험·적용·개선이 가능한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신호다.
AI 인프라는 산업 현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만드는 기반 기술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인프라를 이용해 응용 단계에서 발견된 경험이 다시 모델 학습과 인프라 설계로 환류되는 순환적 진화 체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산업 전환의 중심축이 스타트업으로 이동
이 과정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주체는 스타트업이다. 제조·자동차·반도체와 같은 자본 중심 산업은 대기업이 주도하지만, AI로 산업 문제를 정의하고 실제 전환을 실행하는 역할은 스타트업이 훨씬 적합하다.
AX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프로세스와 역할 자체를 새로 설계하는 전면적 변화다. 이 전환의 최대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 정의이며, 이는 산업 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해결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타트업이 강점을 가진다. 특정 도메인에서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최신 AI 기술로 해결해본 경험이 있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자동화해야 할지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여기에 민첩한 조직 구조까지 더해져 새로운 AI 응용을 실험하고 피봇팅하는 속도가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기술 변화가 극단적으로 빠른 AI 시대에는 이 민첩성이 결정적 경쟁력이다.
글로벌 흐름이 보여주는 AX의 현실화
글로벌 빅테크의 움직임은 AX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는 개발·클라우드 직군을 포함한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며 조직을 AI 기반 구조로 재편하고 있다. 신규 코드의 30%를 AI가 작성하고 있고, 자연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바이브코딩’이 유행하고 있는 현재 기존 개발 조직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즉, AX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며 IT 분야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대기업은 인력 확장 보다 조직 재편에 집중하고 있으며, 반대로 빠르게 실험하고 유연하게 피봇팅할 수있는 스타트업이 AI 시대 조직 모델의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책 방향은 산업 전환 중심으로
정책 역시 기술 중심에서 산업 전환 중심, 지원 중심에서 실행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술 확보는 출발선일 뿐이며,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전략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산업 가치는 창출되지 않는다. 지금이 산업 전환 구조를 세우고 스타트업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야 할 골든타임이다.
서울, 산업 전환의 허브를 향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산업 AX 혁신센터’는 400여 개 AI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서울 AI 허브의 자산을 기반으로, 산업 문제 발굴–기술 매칭–현장 실증을 수행하는 도시 중심 산업 전환 플랫폼이다. 산업 전환을 도시 단위에서 먼저 실현하겠다는 전략적 시도이다.
서울은 산업·연구·대학·스타트업이 집적된 강점을 가진 만큼, ‘산업 AX 혁신센터’는 이 생태계를 활용해 산업 수요 → 기술 실증 → 기업 성장과 기술 고도화로 이어지는 순환형 AI 전환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 생태계는 글로벌 주요 도시간 AI 협력 네트워크로 확장할 수 있다. 국가가 기술 경쟁을 한다면, 도시는 산업 전환의 속도와 실행력으로 경쟁한다. 서울이 구축할 글로벌 도시 네트워크는 AX 시대의 새로운 전략 축이 될 것이다.
결론: AI의 승부처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 전환
AI의 미래는 모델 성능 경쟁이 아니라, 기술을 산업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수요가 다시 기술을 어떻게 진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례가 이미 그 답을 말해주고 있다. AI 기술 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승부처는 산업 전환(AX)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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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진 서울 AI 허브 센터장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센터 교수로, AI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데이터사이언스 조직을 이끌며 반도체 제조 AI·DT 혁신을 추진했고, LG전자에서는 webOS TV 아키텍트로 스마트 TV 아키텍처 혁신과 제품 출시를 주도했다. AI 기반 제조·자율비행·마케팅·금융 분석 등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산업·생태계를 연결하는 AI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