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외상결제’ 찾는 기업들… 현대카드 가장 많이 쓴다

구매전용카드 2년새 49% 증가한 41.6조 현대카드 19조원 규모 압도적 1위

2025-11-25     전대현 기자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빠듯해지면서 결제 시점을 늦추기 위한 카드 활용이 늘고 있다. 경기 둔화로 현금 조달이 쉽지 않자 기업 간 거래대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규모도 올해 10월까지 40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도 본업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법인영업 기반 확대를 위해 구매전용카드를 적극 늘리는 분위기다.

법인 구매전용카드 이용액 / IT조선

25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업카드사 8곳의 법인 구매전용카드(신용) 누적 이용액은 41조614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34조7857억원 대비 19.6% 늘었다. 2023년 10월 27조9002억원과 비교하면 49.1% 증가한 수치다. 이전까지 연간 30조원대 수준이던 시장이 불과 2년 새 빠르게 확대됐다.

구매전용카드는 기업이 납품업체에서 물품을 구매할 때 카드사가 먼저 대금을 지급하고 기업은 이후 한 달 이상 뒤에 결제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결제 시점을 한달이라도 늦춰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드사가 중간에서 자금 부담을 떠안아주기 때문에 자금 압박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구매전용카드 시장은 현대카드와 롯데카드, 신한카드가 주축이 되고 있다. 신한카드는 2023년 10월 2조9370억원에서 올해 10월 6조6343억원으로 125.9% 증가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현대카드는 9조8482억원에서 19조2189억원으로 95.2% 늘며 증가 규모와 증가율 모두 시장을 견인하는 수준을 기록했다. 롯데카드도 12조4114억원으로 25.5% 증가하며 증가폭 상위권을 차지했다.

비씨카드의 경우 현재 계열사를 중심으로 구매전용카드 이용 한도를 내주고 있다. 10월말 기준 BC카드의 기업구매전용카드 누적 이용액은 723억원으로 이중 상당액이 KT·KT엠앤에스 등 특정 계열사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 단기 유동성 부담을 해소하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삼성카드와 우리카드는 각각 49.1%와 20%씩  감소해 전체 시장 흐름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KB국민카드는 구매전용카드를 취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카드사들의 경우 낮아진 본업 수익성을 보완하기 위해 구매전용카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신용판매 수익이 줄었고, 카드론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수익 다변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부 카드사가 사실상 원가 수준에 가까운 조건으로 구매전용카드를 제공하면서도 법인회원 기반 확대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실적을 늘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구매전용카드 자산 확대로 인한 재무 위험도 동시에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구매전용카드자산은 ‘신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추세다. 대부분의 결제자산이 건설·렌털·유통 등 경기 민감도가 높은 업종에 대한 익스포저가 큰 편이어서다. 회수 지연 시 카드사가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해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법인회원의 연체 전이율은 개인회원 대비 변동성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 거래는 금액이 크고 결제 주기가 불규칙해 경기 상황이나 프로젝트 지연에 따라 단기간에 결제 능력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먼저 대금을 부담하는 구조 특성상 기업 연체가 발생할 경우 리스크가 그대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매전용카드가 구조적으로 저수익 상품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수익률은 약 0.2% 수준에 불과해 수익보다는 법인회원 확대와 점유율 경쟁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수익성보다 볼륨 경쟁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는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카드사 손실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유동성 위기와 카드사 수익성 압박이라는 환경이 맞물리면서 구매전용카드 시장은 단기간에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함께 증가하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안태영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구매전용카드는) 렌탈·건설·철강·유통업 등 일부 업종에 대한 거액 여신 집중도가 큰 수준”이라며 “저수익 상품이지만, 법인회원 기반 강화와 시장 점유율 경쟁을 위해 이용 실적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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