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부실채권 급매 4.6조 역대 최대
1년전보다 8천억원 늘어
4대 시중은행이 부실채권 헐값 매각에 나서고 있다. 부실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단순 상각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그 규모가 역대 최대에 달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올해 3분기까지 상각과 매각으로 정리한 부실채권 규모는 총 4조6641억원에 달했다. 이는 상·매각 합산 통계가 가능해진 2018년 이후 최대 기록이다. 지난해 3분기 3조8171억원보다 22.2% 증가한 규모다.
3분기까지 누적 기준 매각 규모는 2조9581억원으로 3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3분기(2조7267억원) 보다 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각 규모도 늘었다. 3분기까지 상각액은 1조70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904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부실채권 상매각은 연체 등으로 회수 가능성이 낮은 대출채권을 은행이 장부에서 지우거나(상각) 제3자에게 매각(매각)해 자산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은행들은 통상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NPL)이 쌓이면 상각과 매각으로 자산을 줄이고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를 개선하려고 하는데 최근 들어 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회수 가능성이 낮은 대출을 과감히 손절, 일부라도 수익을 건지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채권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넘기는 등 부실채권 정리에 나서고 있는 것.
문제는 부실 대출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4대 은행의 3분기 누적 고정이하여신(NPL)은 4조59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3조9307억원) 보다 16.8%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은 원리금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말한다. 상각과 매각으로 정리 속도를 높이고 있음에도 남아 있는 부실이 계속 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부실을 방어할 기초 체력은 떨어졌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국민은행의 NPL 커버리지비율은 174.0%로 전년 대비 5.40%포인트(p) 떨어졌고 신한은행은 같은 기간 20.6%p 하락한 164.4%를 기록했다. 하나은행은 181.7%에서 136.0%로 45.7%p 급락했다. 우리은행도 270.2%에서 180.9%로 89.3%p나 떨어졌다.
부실 리스크는 시장 구조 변화 속에서 더 커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가 연말까지 이어지며 총량 한도를 맞춰야 하는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담대 대출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반면 자영업·중소기업 대출, 생활비 목적의 신용대출은 늘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상환 능력이 취약한 차주들이 증가한 데다, 기업대출 역시 경기 둔화에 따른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어 은행권의 부실 노출이 다층화되는 모습이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은행들은 중소기업·첨단산업 지원 등에 추가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책적 대출 부담까지 떠안아야 해 향후 건전성 관리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실채권비율과 연체율이 상승세에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한계기업 비중도 늘고 있어 은행의 건전성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건전성이 개선되기 보단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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