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산요전기의 창업주인 이우에 도시오는 마쓰시타 산업과 혼맥으로 연결된 사이였다. 마쓰시타 산업은 일본 전지 산업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오던 기업이었다. 흔히 소니 에너지·디바이스가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창시한 기업이라 일본 전지 산업의 핵심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심지어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조차도), 일본의 전지 역사에서는 마쓰시타 산업이 더욱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 뒤를 잇는 전지 산업의 강자가 산요전기였다.

셋 중 전통적 강자에 해당하는 마쓰시타와 산요전기의 이차전지 역사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산요전기의 창업자인 이우에 도시오가 마쓰시타를 사직하고 독립하려 했을 때, 마쓰시타의 창업자인 고노스케가 이우에를 불러 덕담을 한답시고 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지사업은 쉽지 않고 어려우니 하지 말게"라는 것이었다. 이우에 도시오는 "그러마"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지만, 산요전기를 창업한 후 전지 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산요전기를 세계 초일류 전지업체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이후에 마쓰시타의 중역들이 고노스케에게 왜 이우에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냐는 질문을 했는데, 고노스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우에가 마쓰시타 전지 공업의 가장 강력한 전지 산업 경쟁자가 될 거 같아서..."
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인연 덕인지 몰라도, 산요 그룹의 초우량 사업이었던 리튬이온 이차전지 사업은 그룹의 몰락과 함께 마쓰시타 쪽에 넘어가게 된다.

마쓰시타 산업이나 산요전기는 소니 에너지·디바이스와는 근원적으로 차원이 다른 전지 산업을 영위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차이는 전통적인 다른 일차 및 이차전지 산업과 함께 NiMH 이차전지 제조업의 유무로, 오랜 일차 및 이차전지 제조사로의 발자취를 갖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다양한 일차 및 이차전지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던 마쓰시타와 산요전기가 외려 전통적인 전지 산업 강자였고 소니 에너지·디바이스는 여러 일차 및 이차전지 제품군을 자사 상표로 유통하고 있긴 했지만, 비교적 신생 기업이라고 평할 수 있었다.

소니 에너지·디바이스는 기존의 전지산업 강자들을 앞지르기 위한 전략으로 '차세대 이차전지'로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선택했고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전략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후발 주자의 고육지책이었다 평할 수 있다. 소니 에너지·디바이스는 셀폰 시대를 연 각형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산요전기를 다시금 극복하기 위해 파우치형인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내놓았지만 '기가 커스토머'를 잡지 못하였고 배터리 전기차 쪽 대응도 실패하여 결국 역사적인 리튬이온 이차전지 창시 기업의 영광을 내려놓고 무라타에 리튬이온 이차전지 사업을 매각한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산요전기의 전지 사업이 넘어갈 때는 산요의 그룹 차원 문제로 인해 초우량 사업이 마쓰시타로 넘어간 사례(산요전기의 인수 합병은 사업이 초일류일지라도 모기업이 부실하면 인수합병이라는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라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소니 에너지·디바이스가 무라타에 넘어간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산요전기가 마쓰시타에 넘어간 것과 다르게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의 리튬이온 이차전지 사업부가 무라타로 넘어갔다는 건 또 다른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삼성SDI와 LG화학이 바로 '소니'의 사업 모델에 따라 이차전지 산업에 뛰어든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비마다 후발 주자의 장점을 잘 활용한데 이어 배터리 전기차용 중대형 리튬이온 및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 사업에서 아직 잘 버티고 있다는 평을 받기 때문에 잘해 오고 있는 편이었다.

그 후 산요전기는 노키아라는 IT산업의 강자를 '기가 커스토머'로 만나 세계 1위의 리튬이온 이차전지 업체가 되는 등의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그룹 차원의 문제로 말미암아 결국은 마쓰시타로 인수 합병되고 말았다. 물론 그 당시에도 산요전기의 이차전지 사업부분은 여전히 초일류 사업이었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중반 IIT 연차 보고서(지금은 B3라 바뀐 전지 전문 보고서)에 일본인의 감성으로 다께시타씨가 쓴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의 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벌'이었다. 삼성SDI나 LG화학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기가 커스토머'는 아니라도 '메가 커스토머' 역할을 해온 그룹의 전자 계열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특히, 이번 갤럭시 노트 7에서 볼 수 있듯이 삼성SDI는 초도 물량의 60~70% 정도 공급을 맡고 있었다 하겠다. 삼성SDI의 퇴출이 장기화되며 더 확대될지, 아니면 조기 복귀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온 이유는 이 사안이 삼성SDI가 삼성전자에 공급해 온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의 제품 자체만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몇년 전부터 삼성SDI의 미래에 관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업계 내에선 내밀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7월 30일의 필자 칼럼
'[박철완의 IT정담] 위기의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을 진단한다'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다께시타씨가 평한 한국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의 강점이 이제 약점으로 바뀌는 형세 전환이 올지도 모른다. 삼성SDI가 산요전기의 전철을 밟을지, 소니 에너지·디바이스의 전철을 밟을지를 주시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객원기자 박철완 공학박사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화학과에서 학,석,박사를 했고,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를 만들어 초대 센터장을 역임했다. 산업자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초대 센터장,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부단장급)로 책임 운영, 드렉셀대학교 초빙조교수, 박근혜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 네거티브 대응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자문역을 지냈다. 저서로는 '그린카 콘서트'가 있으며 '에너지 소나타'를 준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