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3040세대, 국내 성인남성 대부분은 태권브이 주제가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 그만큼 그들에게 태권브이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1976년 7월 24일 세상에 나온 '로보트 태권브이'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국 극장을 통해 상영됐다. 이 영화를 실시간으로 보고 자란 현재의 중년 남자들에게 진정으로 꿈과 희망을 심어준 작품인 것은 맞지만, 시간이 지남과 함께 실망감을 안겨준 콘텐츠라는 지적도 있다.

태권브이 피규어. / 롯데마트 제공
태권브이 피규어. / 롯데마트 제공
국산 어린이 로봇 애니메이션의 기초를 확립한 태권브이의 유일한 결점이자 팬들을 실망하게 한 요소는 바로 '디자인 카피'다. 태권브이보다 4년 앞서 세상에 나온 '마징가Z'의 기체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만화가 나가이고(永井豪)가 1972년 대중에게 공개한 '마징가Z'는 일본 후지TV 최고시청률인 30.4%를 기록하고, 이후 등장하는 모든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김청기 감독. / 김형원 기자
김청기 감독. / 김형원 기자
김청기 감독은 CBC라디오 등 국내 매체 인터뷰에서 "마징가를 닮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고, 당시 어떻게 하면 표절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으며, 자신의 작품활동에 대해서 "양심을 팔면서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신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태권브이는 머리만 빼고 팔다리・몸통 디자인이 유사하며, 1982년작 슈퍼 태권브이는 같은 해 일본에 방영된 '전투메카 자붕글(戦闘メカ ザブングル)' 속 로봇 자붕글 메카닉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상을 준다.

슈퍼 태권브이(왼쪽)와 자붕글(오른쪽). / 김형원 기자
슈퍼 태권브이(왼쪽)와 자붕글(오른쪽). / 김형원 기자
◆ 태권브이 이외 표절 논란 작품

1970~1980년대까지 국내 어린이를 즐겁게 했던 대한민국 로봇 만화・애니메이션은 '거의 대부분'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일본 로봇 메카닉 디자인 도용이 심각한 수준이며, 애니메이션 내용과 등장인물 역시 같은 시기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과 상당 부분 닮았다.

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 하청과 카피 장난감 일색이던 당시 대한민국의 콘텐츠 산업의 어두운 역사를 말해주는 증표다.

만화가 고유성의 1977년작 '로보트 킹'은 일본 현지서 1967년 출간된 로봇 만화 '자이언트로보'에 등장하는 로봇 'GR2'와 외모가 똑같다. 로봇 디자인 표절 논란으로 로보트킹 복각판 만화책에서는 로봇 디자인과 몇몇 장면이 수정됐다.

김청기 감독의 1978년작 '황금날개 1.2.3'는 로봇은 일본의 '겟타로보', 주인공은 '캐산'과 '허리케인 포리머', 검은 표범 로봇은 캐산의 '프렌더' 디자인을 도용했다.

1979년작 '로봇 찌빠'는 1976년 일본 TBS방송국에서 방영된 '로봇코비톤(ろぼっ子ビートン)' 속 로봇 '부리킨'과 외모가 흡사하다.

김청기 감독의 1981년작 '혹성로보트 썬더에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로봇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주요 모빌슈트(로봇) RX-78 건담을 쏙 빼닮았다.

썬더에이(왼쪽)와 건담(오른쪽). / 김형원 기자
썬더에이(왼쪽)와 건담(오른쪽). / 김형원 기자
김 감독의 1982년작 '초합금 로보트 쏠라원투드리'는 로봇 메카닉 표절 모음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쏠라 원 로봇은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 '육신합체 갓마즈'의 '라'와 '신'의 디자인을 섞어 만들었으며, 쏠라 투는 갓마즈의 왼팔 '타이탄'과 오른 다리 '신'을 닮았다. 쏠라 쓰리는 '로봇 핫짱'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으며, 이들 로봇을 탑재할 수 있는 모선인 쏠라쉽은 특수촬영 드라마 '태양전대 선발칸'에 등장하는 메카닉 '재규어 발칸'과 도장으로 찍어낸 듯 똑같이 생겼다.

쏠라원투드리(왼쪽)와 재규어 발칸(오른쪽). / 김형원 기자
쏠라원투드리(왼쪽)와 재규어 발칸(오른쪽). / 김형원 기자
1983년작 '슈퍼타이탄15'는 일본 토에이가 제작한 1982년작 애니메이션 '기갑함대 다이라가XV' 속 로봇 다이라가XV와 판박이 수준이다.

슈퍼 타이탄15(왼쪽)와 다이라가XV(오른쪽). / 김형원 기자
슈퍼 타이탄15(왼쪽)와 다이라가XV(오른쪽). / 김형원 기자
김청기 감독의 1984년작 '스페이스 간담V'는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속 변신로봇 'VF-1 발키리' 디자인을 아예 그대로 사용했다. 마크로스 발키리와 간담V의 차이점은 로봇 머리에서 삼각형 레이저포가 발사된다는점 뿐이다.

간담V(왼쪽)와 VF-1 발키리(오른쪽). / 김형원 기자
간담V(왼쪽)와 VF-1 발키리(오른쪽). / 김형원 기자
김청기 감독의 1986년작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피에로가 1985년 만든 '닌자전사 토비카게(忍者戦士 飛影)' 속 로봇 '쿠우마 호우라이오(空魔鳳雷鷹)'와 똑같다.
우뢰매(왼쪽)와 VF-1 쿠우마 호우라이오(오른쪽). / 김형원 기자
우뢰매(왼쪽)와 VF-1 쿠우마 호우라이오(오른쪽). / 김형원 기자

◆ 태권브이의 오리지널 요소

1970년대 가난했던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기적적인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평가받지만 로봇 디자인 표절이라는 오명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태권브이에게도 오리지널 요소는 분명 있다.

태권브이는 파일럿의 뇌 신경 체계와 로봇 조종 시스템이 연결되는 최초의 로봇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국내외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평가다.

태권브이(왼쪽)와 마징가Z(오른쪽). / 김형원 기자
태권브이(왼쪽)와 마징가Z(오른쪽). / 김형원 기자
태권브이는 주인공이자 파일럿인 '김훈'의 태권도 동작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 특징이다. 태권브이의 모태가 된 마징가Z가 두 개의 조종간으로 움직이는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애니메이션 업계 한 관계자는 "1970~1980년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계는 일본 작품을 하청받아 제작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런 환경 속에 일본 로봇 디자인 도용은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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