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이 블록체인 바람으로 꿈틀대고 있다. 블록체인을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각 분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유럽 각국의 행보는 가상화폐 가격 등락에 울고웃는 한·중·일 지역의 한탕주의 흐름이나 묻지마 투자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새 기술 패러다임으로 ‘골디락스(Goldilocks·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시대를 준비하는 유럽의 블록체인 혁신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쪽으로 오세요. 상황판을 보면서 설명할게요. 네덜란드블록체인연합(The Dutch Blockahin Coalition·DBC)의 워킹 그룹이 실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입니다. 안드레씨는 ‘디지털 ID’ 프로젝트 리더이고요, 저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필드랩(현장 연구)’을 이끌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제3의 도시 헤이그에서 차로 20분 달리면, 세계 대학 랭킹에서 50위권을 자랑하는 델프트공과대학이 나온다. 이 대학 캠퍼스 빌딩에는 지난해 3월 출범한 블록체인 민관 협력단체 DBC의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판에터 사무국장은 “‘OKR(Objective, Key Result)’라는 성과 관리 기법을 활용해 3개월마다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면서 “‘스마트계약’ ‘대학 교수 재교육’ 등 DBC 산하에는 20개의 워킹 그룹이 있다"고 말했다.
◇ 민·관·학 3각 동맹의 블록체인 실험 '더치 디지털 델타'
네덜란드는 지난해 3월 27일 정부, 기업, 대학이 참여해 기반 기술을 개발하고 법 등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는 블록체인 동맹인 DBC를 출범시켰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ABN암로와 네덜란드은행을 비롯해 ING(보험), CMS(법무), PWC(컨설팅), 델프트 공대, 중앙 정부(경제부, 내무무, 법무부), 왕립공증인협회 등 35개 기업, 정부 조직, 연구소, 협회 등이 참여한다. 기업 회원들은 연간 회비로 3만5000 유로를 내야 한다. 정부는 연간 예산(약 100만 유로)의 25%를 제공한다. 네덜란드의 민·관·학 블록체인 3각 동맹을 ‘더치 디지털 델타(Dutch Digital Delta)’라고 부른다.
르네 패니 드브리스(RENÉ PENNING DE VRIES)는 DBC에서 정보통신 분야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필립스와 NXP의 반도체 분야 고위 임원 출신이다. 드브리스는 “모든 당사자가 협력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뢰시스템을 구현해 보려는 시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에터 사무국장은 “이런 협력이 이뤄진 것은 네덜란드 국가 총생산(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역, 물류, 금융, 식료품 분야가 불록체인과 결합하면 발전가능성이 크다는 데 당사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DBP의 3대 실행 계획(action line)도 여러 이해당사자의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만들었다. 3대 실행 계획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아이덴터티(ID) 개발 ▲제도 정비 ▲인재 양성이다. 20개 워킹그룹의 활동도 최상위 목표인 3대 실행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하부 과제로 짜여 있다.
판에터 사무국장은 “DBC의 놀라운 점은 예산이 아니라 운영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DBC에 참여하는 35개 기업과 기관, 연구소들이 DBC에 인력을 파견하도록 협약을 맺었다"면서 “파견 인력은 총 노동 시간의 50%를 DBC의 워킹 그룹 업무에 쓰며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파일럿 프로젝트가 ‘변화의 순간'을 가져왔다”
네덜란드 정부는 35개의 블록체인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6월 26일 만난 마로스 폼프(Maroles Pomp)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작은 규모로 시작해 시제품을 만들고 현장 테스트를 해보며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 네덜란드 정부가 일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2016년부터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고 공공 서비스에서 활용할 만한 서비스를 기획했다. 이후 파일럿 프로제트를 공동으로 진행할 스타트업을 찾았다. 현재 네덜란드 정부의 블록체인 파일럿 프로젝트에는 60여개의 스타트업이 참가한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정부 보조금 서비스’ ‘ 산후 관리 서비스’ ‘학위 증명 서비스’ ‘ 공항 입국 관리 서비스’ ‘ 음식물 및 유통 관리 서비스’ ‘독성 폐기물 관리 서비스' 등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 정책 당국자들도 처음에는 블록체인을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각종 정책을 만드는 데도 소극적이었다"면서 “하지만,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한 실증 사례가 쌓이자, 당국자에게도 ‘변화의 순간(change moment)’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제 네덜란드는 유럽 여러 국가 중에서도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와 산업을 육성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콘스탄테인 네덜란드 왕자(Prince Constantijn of the Netherlands)가 국영 방송에 출연해 네덜란드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입헌군주국인 네덜란드에서 왕자의 발언은 블록체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콘스탄테인 왕자는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스타트업 델타'의 홍보대사직도 맡고 있다.
폼프는 “인도 등 개발도상국과 협업도 늘리려고 하고 있다”면서 “인도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작게 테스트를 해도 네덜란드에서 전국 단위로 테스트해 보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유럽 GDPR이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이슈"
헤이그는 네덜란드 국회와 정부 부처, 국제 재판소와 세계 각국 대사관이 몰린 행정 중심 도시다. 이곳 정부 청사에서 만난 프란스 라이커스(Frans Rijkers) 네덜란드 내무부 국가신원정보국 전략자문은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효한 새 개인정보보호법(GDPR)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라이커스 자문은 “우리가 추진하는 디지털 아이덴터티는 개인 정보를 암호화한 해시값만 블록체인에 올려 인증이 필요한 은행이나 공항에서 확인해보는 구조”라면서 “이것이 GDPR 규정에 부합하는 지 EU 측 문의해 뒀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아이덴터티를 유럽 전역에 확산하는 목표도 갖고 있기 때문에 GDPR 규정 부합은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GDPR은 유럽 지역 거주자의 개인정보 수집, 활용, 삭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담은 규정으로 이를 위반한 기업은 연 매출의 4% 또는 2000만 유로 중 큰 금액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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