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하나의 ‘전자장비(電子裝備·전장)’가 되고 있습니다. 100% 전기동력을 활용하는 전기차 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차에도 다수의 전장을 적용하는 추세입니다. 당연히 자동차 내에서 필요한 전기의 양도 과거에 비해 많습니다. 전압 역시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폭스바겐의 48V 시스템. / 폭스바겐 제공
폭스바겐의 48V 시스템. / 폭스바겐 제공
1950년대의 자동차는 6V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그정도로 충분히 자동차 내의 전기를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엔진의 고압축비에 따른 시동 부하가 늘고, 에어컨 등이 들어가면서 전압을 두배 올린 12V 시스템이 대세가 됐습니다. 물론 현재까지 이 12V 시스템은 유효합니다.

문제는 최근에 들어서 자동차 구동계, 안전, 편의장비 등에 다양한 전력 요구가 생겼습니다. 모든 기계적 장비가 전자화로 가고 있는 탓입니다. 특히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라고 불리는 운전자보조시스템의 대다수는 전장이고, 이들은 많은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자율주행으로 진화하는 자동차는 통신·네트워크 기술이 필수입니다. 이들 역시 전기를 사용하죠. 단순히 전장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고도화되는 과정입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때문에 12V 시스템은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48V 입니다. 일부 전장에는 12V를 사용하되, 고출력의 전장에는 48V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동일 굵기 전선으로 4배의 전류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배선 무게에 부담이 적고, 전력 손실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전기모터처럼 전력소모가 많은 장치에 이 48V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렇다면 더 높은 전압을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60V 이상의 전압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안전성을 위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48V 전력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 바로 마일드 하이브리드 입니다. 현재 12V 배터리에서는 ISG(아이들 스톱 & 고·정차 시 엔진을 끄고, 출발 시 재시동하는 기능) 정도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연료효율 개선 효과가 5% 정도에 그치고,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하는 일반 하이브리드(스트롱 하이브리드라고 부릅니다)의 경우 수백 볼트의 고전압 시스템이어서 차량 가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가 구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트롱 하이브리드와 달리, 주요 구동력은 지금처럼 엔진이 맡으면서 시동이나, 출발 가속 때 필요한 동력을 전기모터 등으로 부터 얻는 기술입니다. 출발 가속 시 엔진 출력을 보조하기 때문에 모터 어시스트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에 이 시동 발전기는 차가 멈출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해 배터리에 저장하는 회생제동 기능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한 연료효율 개선 정도는 1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내연기관 단독 차는 퇴출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각국의 배출가스 규제가 점차 엄격해지는 상황에서 내연기관만으로는 규제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생산과 판매비용이 큰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한번에 바꾸기는 소비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때문에 48V 배터리 시스템과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현실적으로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기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장규모는 2030년 1053만대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제로 에미션(무배출가스)으로 단번에 갈 수 없다면 점차 전기의 사용 비중을 늘려주는 과도기적 기술이 필요합니다. 배출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당면 과제도 만족해야 합니다. 결국 48V 시스템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