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한번에 서울 한복판이 통신지옥으로 변했다.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 얘기다. 이번 사고로 인근 지역에서 KT가 제공하는 전화, 인터넷, IPTV 서비스가 모두 불통이 됐다. 서울 4개구, 경기도 일산 일부 지역 등 서울의 4분의 1쯤이 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드는 세상이 됐다. 아현지사 화재가 평일 발생했다면 초각을 다투는 은행·증권업계까지 피해가 이어지는 아찔한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다. 아현지사 화재는 단순 광케이블 화재 사고가 아닌 심각한 국가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격적인 것인 셈이다. 정부는 최근 이통업계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다양한 논의 후 5G 시대 통신재난 사태 예방을 위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관리 소홀 지적을 받은 통신구 대상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조치와 함께 KT에 쏠린 통신망의 이원화 등 대비책을 발표했다. IT조선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내린 통신 처방전을 분석함과 동시에 미래 통신재난 사태 예방을 위한 대비책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2018년 12월 2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통신재난 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 류은주 기자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2018년 12월 2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통신재난 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 류은주 기자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KT 통신구 화재로 한국 통신망이 재난에 취약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났다.

오는 3월 본격화하는 5G 통신망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인프라다. 어떤 환경에서도 끊김없이 작동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통신사들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주요 통신 시설 실태 점검 및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5G 시대 안전한 통신망 운용을 위해 필요한 약을 미리 처방받은 셈이라는 점에서는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다.

◇ 통신재난 피해 감소 위해 통신망 우회로 의무 확보 추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2018년 12월 27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62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통신재난 방지 및 통신망 안정성 강화 대책’을 논의한 후 정부 대책을 최종 확정·발표했다.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대책을 자세히 보면, 2018년 11월 KT 아현지사 화재처럼 ‘통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통사는 타사 통신망을 활용해 전화나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 통신 장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 통신사는 일반재난관리 대상시설인 D급 통신국사라 하더라도 통신망 우회로를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통신망 우회로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기술 방식은 가칭 '정보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에서 추가로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다만 통신망 우회로 확보를 위한 투자비를 고려해 통신사별로 재무능력에 따른 유예기간을 준다.

재난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지정된 에너지, 교통, 금융, 의료, 혼경 분야 등 국가기반시설에는 재난대비 통신망 이원화가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행정안전부는 국가기반체계 보호계획 수립지침에 이같은 내용을 반영한다.

정부는 특히 이통사와 함께 통신재난 시 해당 지역에서 이용자가 기존 단말기로 다른 이통사의 무선 통신망을 이용(음성·문자)할 수 있도록 통신사간 로밍을 실시하기로 했다.

각 이통사는 재난지역에서 각자 보유한 와이파이망을 개방해 인터넷·모바일 앱전화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요 통신시설 관리 기준(위)과 통신망 우회로 확보 방안을 나타내는 이미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주요 통신시설 관리 기준(위)과 통신망 우회로 확보 방안을 나타내는 이미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 1월 통신국사 등급 기준 확정…이통업계 "투자 유인 정책 필요"

중요 통신시설(A~C급)은 2년 주기로 실태점검이 이뤄진다. 하지만 통신사가 등급기준에 따라 등급을 자체 분류하고, 이에 대한 적정성 검증을 하지 않고 있어 통신시설 관리체계에 공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주요 통신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점검대상을 일반 재난관리 대상시설(D급)까지 확대하고, 점검 주기(A·B·C급: 2년→1년, D급: 2년 신설)도 단축한다.

통신국사 등급도 재조정한다. 과기정통부는 1월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를 신설해 최종 결정한다. 1월 중 등급지정 기준을 확정하고, 5월 등급 재조정을 실시한다.

정부는 법령 개정을 통해 500m 미만 통신구에도 소방시설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통사는 법령 개정 전이라 하더라도 2019년 상반기까지 500m 미만 통신구에 대해 법령에 따른 자동화재탐지설비, 연소방지설비 등을 설치한다.

통신장애 발생시 이용자 대상 피해보상 범위 확대도 검토된다. 과기정통부는 통신 장애 시 이용자가 약관에 따른 배상뿐 아니라 간접피해 관련 배상도 받을 수 있도록 손해배상 범위 확대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정부 차원의 보상 대책에 대한 이통사의 동의 여부에 대해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KT는 이미 아현국사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용자에게 약관보다 더 많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