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질병' 낙인] 정부 책임론 비등…게임중독세까지 나오면 게임판 등질 이 많을 듯

북마크 완료!

마이페이지의 ‘북마크한 기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북마크한 기사 보러가기 close
입력 2019.05.26 15:09 | 수정 2019.05.26 15:33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해 게임산업계가 크게 반발한 가운데 그 후폭풍이 정부와 정치권까지 덮칠 전망이다. ICD 개정까지 간 데엔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오히려 앞장서 죽였다’는 비판이 들끓는다.

문재인정부는 당장 "이렇게 될 동안 도대체 정부가 한 게 뭐냐"는 게임업계의 비난에 직면했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게임과몰입을 중독으로 몰아붙여 이러한 사태까지 이르게 한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첫 번째)이 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왼쪽 첫 번째) 등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인 7명을 초청해 얘기를 나누는 모습. / 청와대 제공
◇ ‘게임 질병’ 만능 ‘치트키’ 정치권 손으로

WHO가 이번에 결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개정안(ICD-11)은 권고안이다. 회원국가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가 따르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견해도 있다. 순진한 생각이다.

다른나라와 달리 게임중독세까지 들먹이며 게임산업에 온통 부정적 시각을 가진 한국의 정치권과 의학계, 시민단체들이다. ICD 개정안 통과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어떤 비판이 들어올지라도 "봐라. 국제기구도 이렇게 질병으로 규정하지 않았느냐"고 방어할 수 있다. 이들은 ‘게임과몰입=질병’이라는 만능 ‘치트키’(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게 하기 위해 만든 숨겨진 프로그램)를 손에 쥐게 됐다. 이들 앞에서 정부가 권고안을 무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 게임중독세 논란 다시 수면 위로

이른바 ‘게임중독세’ 주장도 또다시 득세할 전망이다. 게임중독세란 게임중독 예방 또는 치료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명목으로 게임업체에 부과하는 분담금이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 손인춘, 신의진 의원부터 시작해 그간 정치권과 시민단체 중심으로 게임중독세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업계 반발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이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규정되니 이러한 질병 원인을 제공하는 게임업체가 일정한 분담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치밀게 됐다. 2018년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게임중독자 치료를 위한 게임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게임업체에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아직’ 게임중독세를 추진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주 헤럴드경제가 ‘정부 게임중독세 추진 논란’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자 "게임중독세를 추진하거나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정정보도 청구·언론중재위원회 제소까지 거론하며 강력 부인했다.

얼핏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꼭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하거나 논의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확인됐다. 하지만 앞으로 추진하거나 논의할 가능성까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커진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 의학계 및 학부모단체까지 가세해 게임중독 예방 치료를 외치며 압박할 경우 정부도 견뎌내기 쉽지 않다.

최도자(사진)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8년 10월 11일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게임중독, 게임장애를 한국 표준질병사인 분류에 포함하고 관련 법 개정과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DB
◇ 송두리째 의심받는 문재인정부 게임산업 육성 의지

문재인정부의 게임산업 육성 의지도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의지가 송두리째 의심을 받는다. 청와대가 그간 게임 질병 등재를 놓고 보건복지부와 문체부가 팽팽히 싸우는 데도 어떠한 중재나 조정 노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WHO 총회가 임박할 때까지 방관함으로써 사실상 WHO총회 정부대표인 보건복지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이같은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후보 시절 발언과 상충한다. 문대통령은 당시 "한국 게임 산업은 물론 e스포츠 분야 최강국이었는데, 게임을 마약처럼 보는 부정적 인식과 그로 인한 규제 때문에 추진력을 잃고 중국에 추월 당했다" 며 "인식과 규제만 바꿀 수 있다면 게임은 얼마든지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이 발언을 정책으로 구체화하지 않았다. 대선 당시 게임산업계는 문대통령 편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최근 문화체육부 장과 교체로 모처럼 콘텐츠산업 육성 의지를 밝혔다. 새로 임명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업계와 간담회를 갖는 등 의욕적 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질병코드 등재로 인해 시작부터 힘이 빠지게 됐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22일 성명을 통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 논란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공식 입장 표명을 주장했다. 문화연대는 "게임산업의 규모와 게임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다른 사회문화경제적 이슈에 비해 덜 중요하지 않은데 이를 조정하기 위한 부처간 논의 등 정부의 어떤 노력도 들어본 바가 없다"라면서 "문재인정부가 자랑하는 사회적 논의, 합의, 공론화 등의 가치와 프로세스는 왜 여기에서 찾을 수 없었을까"라고 반문했다.

. / 트위터 갈무리
◇ 동요하는 게임산업계

게임산업계는 일차적으로 이번 게임 질병 등재안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도록 총력을 모을 계획이다. 또 업계에 치명적인 ‘게임중독세가 또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를 위해 게임 중독이 질병이 되면서 생길 시장 손실이 향후 3년간 최대 1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결과(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덕주 교수 연구팀) 와 같은 연구결과와 방어 논리를 적극 펼칠 계획이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 논쟁에서 논리보다 정서가 앞선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러한 합리적 문제 제기가 제대로 통할 지 의문이다.

그 사이 게임산업인들은 동요한다. 게임산업인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는 게임중독이 질병이 될 2022년 전까지 다른 분야로 이직하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 지금은 이직 정도이나 기업 이전 얘기로 바뀔 수도 있다. 게임업체가 아예 규제 없는 해외로 옮겨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0
주요 뉴스
지금 주목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