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이 사임 표명과 함께 두 부처로 나눈 방송·통신 규제 업무를 방통위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방통위가 주파수 배정, 유료방송 사업자 인허가 및 재허가, 방송의 지역성과 보편성 제고, 시청자와 이용자 보호 등 업무를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은 "정부 부처간 협의해서 논의해야 할 내용은 맞다"면서도 "이 위원장 말처럼 불쑥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위원장은 2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제4기 방통위 2년간의 성과 및 계획’을 발표하며 사임한다고 밝혔다. 방통위원장 임기는 3년인데, 이 위윈장은 1년쯤 남은 임기를 내려놓고 방통위를 떠난다. 방통위원장 중 임기 전 중도 퇴직한 이는 측근 비리 문제로 고심하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류은주 기자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류은주 기자
이 위원장은 "방통위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얽혀 있는 방송·통신 정책 업무를 방통위로 일원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과 통신은 알파와 오메가처럼 서로 연결된 것으로,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관장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그래야 비전을 갖고 일관성·종합성·효율성을 기할 수 있고, 미국 등 주요 국가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2008년 방통위 출범 당시 모든 규제 업무를 방통위가 관장했지만, 2012년 박근혜 정부 때 방송과 통신을 두개로 나누는 퇴행적 조치를 했다"며 "유료방송을 사전과 사후규제로 나누고, 한 정부 내에 방송과 통신을 두 부처가 관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잘못된 업무분장"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유료방송)합산규제 문제처럼 계속 일관성·종합성·효율성을 상실한 채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영민 장관 "불쑥 나올 이야기는 아냐"

같은 날 출입 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시장이 변하고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에 정부의 효율 측면에서 (이 위원장의 말처럼) 그런 논의가 나올 때는 됐다"면서도 "정부 조직에 대한 문제는 사전에 관련 부처끼리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지, 불쑥 나올 이야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강력하게 업무 일원화를 이야기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실제로 이 위원장은 2018년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부처간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며 "통신과 방송 분야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규제 업무에 속한다"며 "규제 업무는 여러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임제가 아닌 위원회로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의 업무분장 논의가 재점화한 시점은 4월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다. 과방위는 과기정통부에 유료방송 사후규제안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당시 방통위의 의견을 수렴한 후 안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국회가 유료방송 분야를 주관하는 과기정통부에 지상파를 총괄하는 방통위를 끼워넣으며 일이 꼬였다. 마치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방송 분야를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양 몰아붙였다.

2008년 출범한 방통위는 방송·통신분야 진흥 및 규제 업무를 모두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를 설립한 이후 방통위는 규제·시장 감시를, 미래부는 정책 수립·산업 진흥 부문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미래부는 과기정통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관련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통신 분야의 진흥은 과기정통부가, 규제는 방통위가 맡았다.

방송의 경우 케이블TV와 IPTV·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플랫폼과 일반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과기정통부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보도 전문 PP·광고 규제는 방통위가 담당한다.

방통위가 과거처럼 방송·통신분야 진흥과 규제 업무를 모두 관장하려면 정부조직법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위원장을 요구는 실현하기 어렵다. 국회가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만 대상으로 정부조직법에 손을 대기도 난무하다. 더욱이 정권 출범 초기도 아니다.

방통위 관계자 역시 이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여러번 전체회의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위원장이 언급했던 내용이다"며 "정부조직법 개정이 지금 당장 거론되는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다"고 말했다.

◇ 갑작스러운 사임 배경 "제2기 문재인 정부 성공 위해"

이 위원장은 갑작스런 사임 배경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쇄신을 위해 대폭적 개선을 앞두고 있다"며 "정부의 새로운 구성과 원활한 팀워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이 위원장은 업무를 계속 담당한다. 후임으로 전현직 언론인과 법조계 출신 인사가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