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민석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

"우리 아이가 소프트웨어(SW)에 관심이 많은데, 대학교를 보낼 형편이 안됩니다. 들어갈 수 있나요?"

한국판 에꼴42(Ecole 42)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문을 열기도 전에 벌써 학부모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온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혁신 교육으로 주목을 받은 프랑스 에꼴42를 벤치마킹한 소프트웨어(SW) 전문 교육기관이다.

에꼴42는 교수·교재·학비가 없이 학생들 스스로 공부하고 성장하는 교육시스템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교육기관과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의 에꼴42와 한국의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차이가 있다면 민간주도가 아닌 정부주도라는 점이다. 2019년 말 서울 강남구 개포로 디지털혁신파크에서 문을 연다.

이민석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 / 류은주 기자
이민석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 / 류은주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SW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노베이션아카데미에 350억원을 투입한다. 4차 산업혁명 인재를 길러 낼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은 이민석 국민대학교 교수(소프트웨어학부)다. 이 학장은 서울대 전자계산공학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 컴퓨터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팜팜테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을 했다. 리눅스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2011년 네이버가 만든 SW학교 NHN넥스트 2대 학장을 역임했다. 2015년 국민대로 자리를 옮겨 교편을 잡았다. 10년쯤 SW 교육에 몸 담은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공유오피스 위워크 3호점에 마련한 임시 사무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그간의 경험을 새 교육모델에 녹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디지털혁신파크는 학생들을 맞기 위한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아직 준비 단계다보니 직원이 달랑 학장 1명뿐이다. 열정만큼 일당백이다.

◇ "교육은 철학 아닌 성과로 완성"

이 학장은 최근에도 혁신 교육모델을 살피기 위해 프랑스와 벨기에 등지를 다녀왔다. 그는 교육은 철학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훌륭한 교육모델들이 실패한 원인은 비용을 측정하고 성과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도 결과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 학장은 "교육도 어떤 리소스(자원)를 투입할 때 어떤 결과(성과)가 나오는지 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아웃풋(산출)을 수익성으로 판단하지만,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역량을 측정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형태가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결국 계속 실험만 하다가 끝난다"고 강조했다.

물론 학생 역량을 측정하는 방법이 정성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초반에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현실적인 (업무에서 필요한)실력이 얼마나 향상했는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 학장은 "시스템을 완성한 후 오픈소스로 공개한다면 회사는 물론 학교와 민간 교육기관 등에서 교육을 실험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며 "지금 일부 민간에서도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기관이 많지만,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민석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 / 류은주 기자
이민석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 / 류은주 기자
또 다른 문제는 기다림 부족이다. 새 교육 시스템을 만들때까지 국민과 정부가 인내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으로 운영하다보니 단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곧바로 ‘혈세낭비'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 나온다.

이 학장은 "교육 혁신은 세금으로 가장 잘 할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세금으로 (운영)하므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며 "초반에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려 한다"고 말했다.

◇ "개발자 뽑을 때 학교, 학위 묻지 않아"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2019년 하반기 250명의 학생을 뽑는다. 연간 500명의 학생을 받는다. 첫 모집이다보니 경쟁률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한다.

학생들을 뽑을 때 SW역량을 먼저 본다. 1차로 서류와 온라인 SW역량 테스트를 진행한다. 민간 회사에서도 사용하는 그 SW역량 시험이다. 이후 라 피신(La Piscine) 전형을 고민 중이다.

이 학장은 "라 피신은 프랑스에서 수영장에 집어넣고 살아남는 학생들만 데려가는 것을 의미한다"며 "교육 기회가 한정돼 초기에 한 달 정도 학습능력을 살펴, 그 중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 선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 학위가 없다. 학력위주 풍토가 여전한 한국이다. 여기를 나왔다고 취업도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많다. 그는 SW 개발업계가 학력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학장은 "글로벌 기술 기업도 , 스타트업도 개발자를 뽑을 때 더는 ‘어느 대학 나왔냐’, ‘전공은 뭐냐'라고 질문하지 않는다"며 "그런 시절은 우리(SW) 동네에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을 개발할 줄 아느냐’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IMF이후 벤처붐이 꺼질 때 SW개발자를 대하는 인식과, 지금 대하는 인식은 완전히 다르며, 개발을 하다가 닭집(치킨집)을 창업해 망할 일은 이제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에꼴42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모델도 시도

새 교육모델을 시도하는 만큼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 학장은 "에꼴42는 멘토의 도움 없이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마치 종교적 신념처럼 중시한다"며 "하지만 역량이 조금 부족한 학생들은 초반에 도와주면 빨리 클 수 있어 아예 도와주지 않는 에꼴42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달리 갈까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멘토링을 집중적으로 해주다가 나중엔 혼자서만 하도록 하거나, 학생이 만들어 놓은 코드를 리뷰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축의 교육 모델을 만드는 방법이다. 학생 수준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교육 모델을 확립하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고민과 걱정이 많다. 그래도 기대와 설렘이 앞선다.

"교육기관과도 상의하고, 다양한 SW 교육자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기르고, SW 생태계를 바꾸는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