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암호화폐 공개(ICO)뿐 아니라 소위 증권형 토큰(STO, Security Token Offering)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토큰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ICO 등 전면 금지 발표 이후 이를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령 제정이나 개정은 1년 10개월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 또는 법령에 근거한 구체적인 행정행위를 통해야만 한다.

즉 현재 상태에서 정부는 ICO나 STO 행위 자체를 형사처벌 하거나 중단시키는 합법적인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가 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기, 유사수신, 불법 다단계 판매 등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수반된 ICO는 형사처벌하고, 자본시장법상 인·허가, 등록, 수리가 필요한데 이를 위반한 STO는 행정처분 또는 고발 조치를 하는 이유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혁명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전세계적인 금융 및 자본시장 혁신 흐름에 한국기업이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와 STO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韓·美, 같은 엄격한 태도지만 결과 달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경우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는 건 미국과 한국이 동일하다. 다만 미국은 현존하는 법령을 위반하는 ICO·STO를 처벌한다는 입장이고, 한국 정부는 현존하는 법령 위반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ICO·STO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실무상으로 그 법적 효과는 동일하다. 현행 법령 위반하면 처벌되고, 현행 법령 위반하지 않으면 다 가능하다.

양국 정부 입장 차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 차이는 막대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ICO와 STO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 실시 기업 숫자가 가장 큰 국가다. 블록체인 혁명을 선도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ICO를 진행한 기업은 단 한 개 뿐이다. 공식적인 STO는 없다.

ICO를 빙자한 사기, 유사수신, 불법 다단계 업체는 현행법에 따라 강력히 처벌해 투자자를 보호하면 된다. 합법적인 ICO, STO를 장려해야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ICO와 STO를 전면 금지한다는 건 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건 아닌지 심하게 우려스럽다.

홍길동 된 전자증권, STO 허용돼야

현행법상 주식은 종이로 된 실물 주권 또는 법률에 의해 전자등록된 주식, 주권미발행된 권리 형태의 주식 등 3가지 형태다.

주식사채 등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증권법)이 9월 16일 시행되면 모든 상장사 주식은 전자등록주식으로만 발행, 유통돼야 한다. 비상장회사는 정관으로 정한 바에 따라 전자등록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전자증권법 상 전자등록이란 주식 종류·종목·금액, 권리자 및 권리 내용 등 주식에 관한 권리 발생, 변경, 소멸에 관한 정보를 전자등록계좌부에 전자적 방식으로 기재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등록주식은 전자등록계좌부에 전자등록된 주식을 말한다. 전자등록기관은 주식 전자등록에 관한 제도 운영을 위해 금융위원회 및 법무부장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자를 말한다.

한국예탁결제원 외에는 전자등록기관으로 허가받은 곳이 아직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은 블록체인 기반 주주총회 전자투표와 채권장외결제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추진한다. 전자등록계좌부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하겠다는 계획은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반면 미국 예탁결제원은 액센추어, R3 등과 함께 블록체인이 미국 증권시장의 일간 거래를 지원할 만큼 충분한 확장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실험을 지난해 진행했다. 그 결과 가능성을 인정했다.

러시아 예탁결제원 역시 러시아 주식시장 결제 및 청산 업무를 위해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디지털 예탁결제원 D3레저 프로젝트를 스위스에서 진행한다.

전자증권법에서 전자등록계좌부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면 그 위에서 발행, 등록, 거래되는 전자증권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정부가 전면적으로 그 발행을 금지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즉 토큰형 증권 또는 증권형 토큰이다.

물론 토큰 중에는 증권성을 가지지 않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과 같은 유틸리티 토큰도 있다. 그럼 토큰 형태 주식은 자금조달 규제 법령인 자본시장법 상 증권 범주에 포함될수 있을까?

자본시장법은 지분증권, 채무증권 등 개별 증권 정의 규정에 각 유형별 증권 종류를 예시적으로 열거한다. 또 열거된 증권과 유사한 권리를 표시한 증권은 유사 개별 증권으로, 권리가 표시되지 않은 증권은 간주 증권으로 포괄해 규제한다.

예를 들면 주식의 경우, 실물로 발행된 주권을 지분증권의 한 예시로 열거한다. 전자등록 주식은 지분증권 정의에서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서 출자지분 또는 출자지분을 취득할 권리가 표시된 것’의 개념의 외연에 포함될 수 있다. 주권을 발행하지 않은 비상장회사 주식은 단순히 권리 상태에 있다. 이런 형태 주식은 자본시장법 상 규정하는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증권에 표시될 수 있거나 표시되어야 할 권리는 그 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증권으로 본다’는 간주증권 개념으로 포섭할 수 있다.

블록체인 상 주식을 상정해 보면 주권이나 법률에 따른 전자등록주식이 아니면서 블록체인 상 토큰으로 발행하는 경우에는 블록체인 상에 주식 종류, 금액, 권리자, 발행자 등 내용이 ‘표시’되면 주권과 유사한 것이다. 즉 출자지분이 표시된 주권 유사 지분증권으로 분류하면 된다.

블록체인 상에 이러한 권리 내용이 표시되지 않은 상태로 발행된 토큰은 자본시장법 상 주권 또는 출자지분 간주증권으로 분류해 소액공모, 사모 등 발행 유형별로 정한 규정을 준수해 합법적으로 토큰 형태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금융위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코스콤이 신청한 블록체인 기반 비상장기업 주주명부 및 거래활성화 플랫폼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승인했다는 사실이다.

STO 허용 없이는 빈껍데기뿐인 플랫폼만 남아

위 서비스는 비상장회사 주식을 블록체인 상에서 P2P 형태로 유통시키기 위한 증권 유통시장 측면의 플랫폼 서비스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서비스가 실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이 발행하는 토큰 형태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행위(STO)에 대한 정부 입장이 우선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큰형 증권 발행시장을 차단한 결과 결국 이용자가 거의 없는 빈 껍데기뿐인 플랫폼이 될 것이다. 물론 기존 발행된 비상장주식을 코스콤 플랫폼에서 토큰형 주식으로 전환해 P2P 유통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허용하면서 애초 발행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이 블록체인 상에서 주식을 토큰 형태로 적법하게 발행하는 것을 거부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고 할 것이다.

토큰 형태 주식은 그냥 블록체인에 기반한 전자등록주식과 동일한 유형일 뿐이다. 한국예탁결제원 등 전자증권법상 전자등록업자들이 전자등록계좌부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할 지 여부는 해당 업자들의 선택 사항이다.

반면 스타트업, 벤처기업 등 비상장회사가 블록체인과 무관한 법률상 전자등록주식이 아닌 블록체인 상의 토큰 형태로 주식을 발행할 지 여부 역시 개별 기업의 선택 사항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더 이상 개개 기업들이 법령을 준수하여 토큰 형태의 주식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것을 금지할 명분과 실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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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 법무법인(유)한별 변호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에서 금융투자전공 석사, KAIST 지식재산대학원에서 공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사법연수원 32기 수료 후 법무법인(유) 동인 금융팀 파트너 변호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MBA 겸임교수, KAIST MIP 저작권/엔터테인먼트 특강 강사,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 이사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는 한별에서 블록체인자문팀과 벤처스타트업센터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네오위즈홀딩스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 임원, 중소벤처기업법포럼 상임이사, 후오비코리아 블록체인스타트업 멘토링 등 벤처스타트업과 블록체인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