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스니커즈 중개 거래앱 ‘프로그’ 정하윤 대표 인터뷰
밀레니얼 세대 투자 수단 떠오른 ‘스니커테크’
데이터자동화·블록체인·핀테크 등 각종 기술 활용
‘정·가품 검수’ 차별화로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
프리 시리즈A 투자로 총알 장전
"유럽에서 현지인이 제게 갑자기 다가오더니 묻더군요. 지금 당신이 신고 있는 그 신발, 나한테 1000유로(약 129만원)에 팔 수 있냐구요. ‘이거다’하고 무릎을 탁 쳤죠."
국내 최초 한정판 스니커즈(운동화, 신발) 중개 거래 플랫폼 ‘프로그’를 운영하는 정하윤 대표에게 이 사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2년 전 남동생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던 정 대표는 이같은 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한정판 스니커즈를 다른 이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시장에 생각보다 많은 마니아층이 있고 사업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스니커테크 등장…제조방식 변화가 마니아 구매욕 자극
프로그는 정품 신발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프로그에서 일어나는 거래는 간단하다. 신발을 판매하려는 A씨가 앱에 신발 모델명과 예측 가격을 올리면 끝이다. 사진을 올릴 필요는 없다. 신발 품질 검사는 프로그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매자가 신발 구매를 원할 경우, A씨는 정품 및 퀄리티 검사를 위해 프로그에 신발을 배송 보낸다. 정품 검수가 이뤄진 후 프로그에서 구매자에게 신발을 배송하면서 거래가 이뤄진다.
이 같은 시장이 형성된 건 제조방식 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과거에는 비용절감을 위해 대량으로 제조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기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걸 좋아하고 트렌드는 빠르게 바뀐다. 생산 기술 발달은 비용을 줄이면서도 이런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대처할 수 있게 됐다.
한정판에 매료된 수집자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원하는 제품을 구하려는 소비행태를 보인다. 스니커즈가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는 재테크 상품으로 부상한 이유다. 과거에는 고가 명품백을 되팔아 재테크하는 ‘샤테크(샤넬+재테크)’ 열풍이 불었다면 이제는 한정판 운동화에 투자하는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 시대다.
실제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정판 스니커즈를 비싼 가격에 구매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코에 따르면 지난 10월 세계 스니커즈 리세일 시장이 현재 20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 60억달러(약 7조1160억원)까지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일례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가수 지드래곤(GD)과 협업해 에어포스1 파라 노이즈를 내놨다. 이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나이키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이키는 홍대 매장에서 판매를 위한 추첨행사까지 진행했다. 이날 판매된 신발은 온라인 중고판매 사이트에 수백만원 대 가격으로 다시 등장했다. 앞서 5월에는 23만9000원에 출시된 나이키 조던1 트레비스 스캇 모델이 특정 중개 플랫폼에서 240만원에 팔렸다. 10배가 넘는 가격이 됐다.
문제는 이렇게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 중 가품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사기도 판을 친다. 해외직구는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주문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뒤따른다.
정 대표는 이런 소비자 심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그는 1년 전인 2018년 12월 프로그를 시장에 선보였다. 1년이 채 안된 현재 베타버전임에도 프로그 가입자는 5만명을 넘어섰다. 일일활성사용자(DAU)는 8000-9000명에 달한다. 실질 거래는 하루 최소 120건이다.
준비도 철저히 했다. 정 대표는 프로그 출시에 앞서 약 1년간 업계 관계자 1000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무엇을 제공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제공하느냐의 문제야말로 서비스 제공자가 진정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라며 "중개 플랫폼을 찾는 소비자는 이미 제품 정보를 다 알고 들어오는 마니아 층인 만큼 정보 제공 요소는 모두 제거하되, 몇 번의 클릭만으로 거래가 성사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타 버전을 돌리면서 정 대표가 얻은 교훈은 ‘앱 내 소비자가 어떤 걸 원하는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프로그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 중 ‘꼼꼼한 정가품 검수’ 외에도 ‘간편한 판매·등록’과 ‘최저가 구매’, ‘무이자 할부’, ‘신속 정산’ 등이 생긴 이유다.
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머신러닝’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는 "학부에서 데이터 마이닝을 공부하다 보니 비즈니스에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 지 매일 고민한다"며 "수작업으로 이뤄져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일차적으로 머신러닝을 도입하면 소비자에게 더욱 상세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정가품 검수’를 들었다. 신발과 함께 거래되는 신발 박스와 신발 내부에 부착된 탭 정보를 활용해 정가품 검수를 우선 실시한다.
정하윤 대표는 "폰트만으로 정가품 검수를 진행하진 않지만, 신발 박스에 부착된 스티커 태그와 신발 내부 태그 폰트를 활용하면 검수가 가능하다"며 "나이키와 아디다스 특유의 ‘폰트’는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누적, 학습시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는 물류 혁신을 위해 블록체인 도입도 계획한다. 정 대표는 "프로그에서 구매한 신발은 통상 재테크용이기 때문에 향후 2·3차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프로그가 검수한 신발이 맞는지 그 ‘증명 부분을’ 블록체인 투명성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핀테크 분야에도 욕심을 냈다. 제2금융권과 협력해 신발을 담보로 한 금융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셀러(판매자)는 한번 구매할 때 수십개 신발을 사는 만큼 악성 재고가 남을 경우 다른 신발에 투자하지 못한다"며 "단기현금대출처럼 프로그 앱에서 신발 구매 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 머니’를 제공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는 내년쯤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다만 해외에 이미 관련 중개 플랫폼이 넘쳐난다. 미국 중개 플랫폼 ‘스탁엑스’는 출시 3년만에 1조원 이상 가치를 지닌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그 돌파구로 그는 철저한 정가품 검수 능력을 꼽는다. 해외 경쟁사들이 판매 수량에만 중점을 둔다는 약점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정 대표는 "해외 경쟁사 A는 하루 발생하는 거래량이 1000건 이상이다"라며 "배송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쟁사 대부분은 정가품 검수를 일일이 하기보다는 구매자가 가품같다고 요청할 경우 환불해 주는 방식"이라며 "프로그는 철저한 정가품 검수로 퀄리티 있는 정품만을 배송해 고객 불편함을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발 이외에 패션 영역으로도 비즈니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2020년 초 프로그 정식 앱이 나온다"며 "베타 버전으로 유용한 결과를 많이 얻었고 시장 가능성을 본 만큼 고객 반응을 패션 분야에 녹여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말 약 10억~20억 규모 프리 시리즈A 투자가 계획됐다"며 "이를 기반으로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역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프로그 비전을 이익분배라고 소개했다. 정 대표는 "거둬들인 이익을 사회에 분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는 정부와 기업이다"라며 "기업인으로서 ‘쉽게 포기하지 말기’, ‘눈치보지 않고 내가 하려는 것을 당당히 펼치기’ 등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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