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에일리언로봇 대표 인터뷰
국내 최초 ‘격불로봇’ 개발…로봇 제조 스타트업 대표 주자
"어려운 외식업계에 신바람 불어 넣겠다"

기다란 테이블 위에 ‘ㄷ'자로 꺾인 로봇 팔이 있다. 팔 끝에는 ‘차선’이라는 빗자루 같은 물건이 달렸다. 차선은 말차 가루를 개어 세밀한 거품을 만들때 사용하는 도구다. 로봇 팔은 조심스럽게 말차 가루와 물이 담긴 그릇에 차선을 담근다. 차선으로 한번 그릇 전체를 휘 긋고, 앞뒤로 조심스레 젓는다. 같은 동작을 몇 번 반복한 후 로봇은 차선을 빠르게 흔들기 시작한다.

이는 ‘격불'이다. 일본 전통 방식에 따라 말차를 마시기 전 하는 작업이다. 말차에 든 사포닌이라는 성분 때문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거품이 발생하는데, 이를 잘게 쪼개 더욱 부드러운 거품으로 만들어 맛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는 마냥 쉬운 작업이 아니다. 세밀하면서도 풍성한 거품을 만들려면 오래동안 반복해야 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손목에만 힘을 주고 천천히 휘젓다가 차선을 이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단순히 휘젓기만 해서는 맛있는 말차를 만들 수 없다.

에일리언로봇의 카페맨이 격불하고 있는 모습./ 에일리언로봇 제공
에일리언로봇의 카페맨이 격불하고 있는 모습./ 에일리언로봇 제공
격불 로봇은 로봇제조 스타트업 ‘에일리언로봇(ALIEN ROBOT)’이 개발했다. 2016년 설립한 이 회사는 식음료 제조 자동화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한 기술 전문 스타트업이다. 2017년에는 퓨처플레이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IT조선은 11월 29일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컴업2019’ 행사장에서 로봇 제조 스타트업 ‘에일리언로봇(ALIEN ROBOT)’의 이선우 대표를 만났다.

국내 최초 말차 만드는 격불 로봇

공학 박사 출신인 이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로봇을 좋아했다. 그가 로봇 사업에 도전한 건 기술도 이제 비즈니스가 돼야 한다는 믿음에서부터다. 기술이 연구실을 넘어 실생활에 활용되고 수익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격불로봇과 커피를 만든느 바리스타 로봇이다. 그는 두 로봇을 ‘카페맨'이라고 통칭했다.

현재 커피를 만드는 에일리언로봇 카페맨은 서울 강남N타워, 팁스타운S2, 벤처리빙랩 등 서울 내 총 5곳 매장에서 사용된다. 카페맨이 만들 수 있는 커피는 핸드드립 커피와 아메리카노다. 현재 카페라떼와 카라멜 마키아토를 만드는 로봇도 개발 중이다. 커피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다. 핸드드립커피는 4분 이내, 아메리카노는 1분 내에 만든다. 기존 바리스타가 서서 커피를 제조하던 위치에 설치할 수 있어 차지하는 공간이 적은 장점도 있다.

격불 로봇은 올해 상용화됐다. 9월부터 차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힛더티와 함께 서울 성수동 말차 전문점 ‘슈퍼말차'에서 운영된다.

이선우 대표는 에일리언로봇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했다. 카페맨에는 ‘에일리언 드라이브(Alien Drive)’라는 자체 개발 소형 로보틱스 액추에이터가 탑재됐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이 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부품이다. 또 로봇이 입력된 레시피대로 커피를 만들도록 하는 카페맨용 소프트웨어도 직접 개발했다.

에일리언로봇의 카페맨이 격불하고 있는 모습./ 에일리언로봇 제공
에일리언로봇의 카페맨이 격불하고 있는 모습./ 에일리언로봇 제공
로봇 바리스타 장점은 ‘항상 균일한 맛’

로봇이 만든 커피와 말차 맛은 어떨까. 로봇은 맛 편차를 줄여 항상 균일한 맛을 낸다. 반면 카페 파트타임 근로자(사람)는 똑같은 레시피지만 컨디션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이 대표는 "구현하고 싶은 레시피를 소프트웨어에 입력만 하면 맛이 균일한 음료를 계속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료 맛은 입력해둔 레시피 그대로 나온다는 설명이다.

사실 커피를 만드는 로봇을 구현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첨단 IT 플랫폼과 전통적인 기계 장치기술 모두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기계를 만들기 위한 각종 기반 장비를 구축하고, 제품을 만든 뒤 소프트웨어까지 만들어야 했다. 현장에 로봇이 적용된 이후 발생할 기계 노후화 등 각종 문제도 예측해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다만 이 대표는 어려움을 장점으로 극복했다. 오히려 스타트업 규모에서 이 정도 기술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타트업 중에는 경쟁업체가 없고 우리만의 색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선우 에일리언로봇 대표./ IT조선
이선우 에일리언로봇 대표./ IT조선
"어려움 처한 외식 산업 시장에 로봇으로 활력 불어 넣겠다"

그는 최근 국내 외식업체(F&B, Food and Beverage) 시장으로 확대 적용할 목표를 세웠다. 미국이나 유럽은 인구 1인 당 최식업체가 20~30개 수준이지만 한국은 125개에 달할만큼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 외식업체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데 반해 규모는 영세하고 수익성은 높지 않다. 최근 국내 F&B시장에 배달용 로봇이나 공유주방 등 혁신 바람이 부는 이유다.

이 대표는 "시장은 크지만 영세성을 벗어나기 위해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며 "인건비와 임대료를 줄이기 위해 로봇을 활용하거나 공유주방 서비스 등에 업계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업계는 로봇 가능성에 주목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열리는 가전 박람회 CES를 주최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최근 발표한 2020년 5가지 기술 트렌드 중 하나가 로봇이다. 리테일용 로봇 시장은 올해 말 시장규모만 약 240억달러(약 28조 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24년에는 약 600억달러(약 70조8000억원)까지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커피 만드는 로봇 자체는 새롭지 않다. 다만 경쟁 업체 로봇은 자판기와 로봇 바리스타 중간 지점에 머물렀다. 로봇은 커피머신에서 나오는 음료를 컵에 담아 고객에게 옮겨주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 점에서 에일리언로봇은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로봇 가격은 기술 발전 덕분에 낮아지는 반면, 인건비는 매년 오르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로봇이 고정비를 절감해 자영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식음료 시장도 로봇과 5G 등 IT기술을 기반으로 자동화된 시대가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