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대신 소프트웨어”…‘디지털치료제 시대’ 열린다

입력 2019.12.26 06:00

미국서는 의사가 일부 환자에게 의약품 대신 모바일 앱을 처방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을 거친 모바일 앱과 플랫폼 같은 소프트웨어(SW)를 의학적 치료제로 허가하면서 이뤄진 현상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피하주사나 약물이 아니더라도 질병 관리가 가능한 디지털치료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합성신약과 바이오의약품에 이어 3세대 치료제로 주목받는다. 디지털치료제란 의약품처럼 임상시험을 거친 디지털 기술을 환자 치료를 위한 약처럼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디지털치료제는 신약 개발이 어려운 뇌신경계와 신경정신과 질환, 약물 중독 등 분야에서 효용성을 보이고 있다. 약물중독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미국에서는 임상을 거친 디지털치료제를 패스트트랙으로 허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디지털치료제 승인을 받은 곳이 없다. 일부 업체가 임상 승인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이 시장 전망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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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치료제 승인에 바쁜 美 FDA

미국은 약물중독과 정신질환 치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치료제 수요가 많다. 미국 FDA가 디지털치료제를 환영하는 이유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발표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 동향’에 따르면 미국 내 디지털치료제 시장규모는 2017년 8억9000만달러(1조354억원)에서 연평균 30.7%씩 성장해 2023년에는 44억2000만달러(5조1422억원)를 형성할 전망이다.

미국의 첫 승인을 받아낸 디지털치료제는 페어테라퓨틱스 모바일 앱 ‘리셋(reSET)’이다. 리셋은 12주에 걸친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알콜, 코카인, 대마 등 약물중독을 치료한다. 텍스트나 비디오, 애니메이션, 그래픽 등 다양한 컨텐츠를 활용해 인지 행동 치료를 할 수 있다. 해당 앱을 활용하려면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질병 관리 보조적 수단이 아닌 구체적 적응증 치료 목적으로 활용된다.

2018년 페어테라퓨틱스는 미국 FDA로부터 아편 중독 디지털치료제 ‘리셋오(reSET-O)’를 허가받았다. 이 역시 12주간 진행되는 치료며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올해 4월에는 미국 의료기기 업체 뉴로시그마가 개발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플랫폼이 의학적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해당 플랫폼은 만7세~12세에 적용된다. 머리에 부착하는 패치 형태로 이뤄졌다. 환자가 수면 상태에 이르면 해당 패치는 뇌 특정 부위를 자극해 ADHD 증상을 완화한다.

아직 승인 전이지만 디지털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플랫폼은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알킬리 인터렉티브의 게임형 ADHD 디지털치료제다. 환자의 주의력 향상을 목적으로 개발된 해당 게임은 현재 FDA 심의를 받고 있다. FDA 승인이 떨어지면 이 게임은 의사 처방을 받는 최초의 치료형 게임이 된다.

국내서도 관련 임상 활발…시각부터 치매까지

국내서는 아직 디지털치료제로 식품의약안전처 허가를 받거나 심사받은 사례가 없다. 다만 관련 치료제 개발 및 임상은 활발하다.

국내 디지털치료제 중 식약처로부터 디지털치료제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가장 대표적인 치료제는 ‘뉴냅비전’이다. 뉴냅비전은 현재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이 임상에 참여해 이중눈가림과 무작위배정, 대조군 비교 우월성 평가 등 치료효과 입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뉴냅비전은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창업한 뉴냅스의 디지털 치료제로 뇌졸중 후 눈과 시신경에는 이상이 없지만 시각중추 손상에 따른 시야장애 환자가 VR용 헤드마운트 장치를 착용해 훈련하는 SW다.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 로완은 최성혜 인하대학교 교수팀 외 유수의 대학병원과 함께 한국형 다중영역 인지기능 향상 훈련 프로그램 ‘슈퍼브레인’을 개발하고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슈퍼브레인은 경도인지장애를 앓는 환자 뇌 학습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2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삼성전자 C랩에서 분사한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 웰트는 노인성질환인 근감소증 진단 및 관리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평상시 환자 데이터 수집 및 근감소증 관리, 개인 맞춤형 운동 처방을 제공하고, 사용성을 통한 동기 부여, 자기 효능감 관리로 지속적 환자 사용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디지털치료제 산업이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상 효용성 증명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디지털치료제가 실제 치료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계별 관련 규제가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승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산업기획단 연구원은 최근 한 행사에서 "국내서 개발되는 디지털치료제는 기존 복잡한 규제 절차로 인해 시장 출시가 쉽지 않다"며 "새로운 혁신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 체계가 신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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