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AI+X ② 5G생태계 ③ 최고디지털전환책임자(CDO)

"디지털 전환을 산발적으로 진행했다가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를 지휘할 책임자를 꼭 두십시요."

고동현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는 최근 IT조선이 주최한 ‘디지털 전환 토크쇼'에서 기업마다 디지털 전환 최고책임자(Chief Digital Transformation Officer. 이하 CDO)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가시적인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자 어느 순간 흐지부지 끝나는 것을 많이 지켜본 전문가가 내린 해법이다.

2020년 새해를 맞은 재계와 산업계가 공통적으로 내건 슬로건은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기술기업은 물론이고 전통 제조업과 유통, 은행과 증권과 같은 금융서비스업체까지 가리지 않는다. 주요기업 오너와 CEO들은 신년사를 통해 경쟁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주요 키워드로 강조했다. 2011년 IBM 보고서를 통해 등장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2020년을 달굴 전망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 시대다. 그런데 여전히 대다수 기업들은 정작 뭘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에 빠졌다. 디지털 전환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누가 무엇부터 해야하는지 모르는 탓이다.
최재섭 삼성SDS AI사업팀 상무는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19’에서 "디지털 전환이 업계 추세가 됐지만 전체 기업의 65%의 기업은 아직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업무 효율화와 고객 경험 혁신을 넘는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도 꾀한다. 이렇게 하려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디지털 전환 역량을 갖춘 사람도 키워야 한다.

디지털 전환 2020 전망 토크쇼를 진행하는 (사진 왼쪽부터) 홍원준 조선미디어그룹 컨벤션채널 팀장, 천석범 SAP코리아 부사장, 우미영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나승주 인텔코리아 상무, 고동현 BCG 파트너, 김창훈 KRG 부사장. / IT조선
디지털 전환 2020 전망 토크쇼를 진행하는 (사진 왼쪽부터) 홍원준 조선미디어그룹 컨벤션채널 팀장, 천석범 SAP코리아 부사장, 우미영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나승주 인텔코리아 상무, 고동현 BCG 파트너, 김창훈 KRG 부사장. / IT조선
디지털전환 조직과 함께 이를 진두지휘할 책임자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이유다. 고동현 파트너는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이를 IT 책임자 정도로만 여기는 건 낡은 생각"이라며 "CDO(Chief Digital Officer)를 둬 그 역할을 맡기는 기업들이 생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두산과 현대기아차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해 다른 기업보다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이다. 내로라 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다. CJ그룹도 2020 정기인사에서 차인혁 부사장을 그룹의 CDO로 선임, 그룹 전반의 DT전략과 IT 신사업을 추진하게 했다.

CEO야말로 디지털전환 최고책임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독일 SAP는 디지털 전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응? 소프트웨어기업 아닌가? 무슨 디지털전환이 필요해?" 당연히 나올 의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디지털 기업도 시장과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에 구닥다리 기업이 되기도 한다. 모바일 중심으로 산업이 급격히 변화하자 MS는 마치 아날로그 전통기업처럼 여겨졌다.

조직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한 MS는 2014년 2월 새 최고경영자로 사티아 나델라 CEO를 영입했다. 나델라 CEO는 자신의 역할을 ‘기업문화 큐레이터’로 꼽았다. 매출에 매몰되기보다 내부 조직문화 개선에 노력을 쏟았다.

이지은 한국MS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인비전 포럼에서 "조직문화의 변화가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여정의 기반이 됐다"면서 "그 결과 제품 판매 방식이나 사업 방향 등 전반에 혁신을 도입하며 회사 역량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MS는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기 위해서 CEO가 사실상 CDTO(Chief Digital Transformation Officer)로서 역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연 한국MS 이사는 "디지털 전환은 비단 IT부서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전반을 혁신하기 때문에 CEO처럼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한 넓은 시야와 책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CDTO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며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MS는 디지털전환 덕분에 시가 총액 1위를 탈환했다.

디지털 전환에 나서는 기업들...기업 경쟁력 성패 좌우

SAP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을 비롯한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기업용 솔루션 시장만 집중해 미국 글로벌 SW업체들의 도전을 물리쳤다. 그런데 주력인 ERP 시장이 포화했다. 인터넷을 넘어 클라우드와 모바일 바람이 불면서 기업용 SW의 입지도 불안해졌다.

디지털 기술기업인 동시에 전통 기업인 SAP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그 때 디지털 전환이 시작했다. 세계의 수많은 고객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해법을 물었고, SAP도 방법을 같이 찾게 됐다. 고객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다가 저절로 SAP도 새로운 기술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됐다. 스스로 고객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통찰력을 얻는 지능 기업이자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는 "세계화와 전문화,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으로 비즈니스모델이 급격히 변한다"며 "지능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도입해 더 민첩하고 스마트해져야 이 변화의 시대에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임직원이 클라우드 성공 사례를 분석하면서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역량을 높이도록 돕기 위해 이노베이션 빌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AWS 제공
대한항공은 임직원이 클라우드 성공 사례를 분석하면서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역량을 높이도록 돕기 위해 이노베이션 빌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AWS 제공
대한항공은 2018년 11월 한국 대기업과 세계 대형 항공사 최초로 전사 정보기술(IT) 시스템을 AWS 클라우드로 전환한다고 발표해 주목을 모았다. 총 3단계의 클라우드 이전 단계에서 1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단계를 진행하는 상태다.

이를 지휘한 장성현 대한항공 마케팅/IT부문 부사장은 "단순한 IT 인프라 변경을 넘어 대한항공의 모든 조직이 AWS 클라우드라는 공통 언어를 사용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도록 조직 문화를 변혁하고 있다"며 "클라우드 전문가를 양성하고 전사적인 디지털 혁신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AWS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한다"고 말했다.

SK인포섹은 고객사의 디지털 혁신에 맞춘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최근 조직을 5개 본부 체제로 재편했다. 경영지원/DT추진본부가 눈에 띈다. 디지털전환을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용환 SK인포섹 대표이사는 "창립 20주년이며, 제2의 도약을 실행하는 출발점에 섰다"며 "고객의 디지털 혁신에 발맞춘 조직 구성과 사업 수행으로 신뢰받는 보안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을 2020년 올해 우리나라 재계와 산업계에서 부쩍 많이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한화, 롯데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주력이 아닌 대기업집단 오너들 입에서 ‘디지털 전환’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너와 힘있는 CEO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성공을 보장하는 최고디지털전환책임자(CD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