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신약 개발은 위기에 처해 있다. 신약 개발 초기 임상시험이 국내서는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이뤄진다. 선진국처럼 신약 개발 강국이 되려면 국내서 초기 임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서 이뤄지지 않는 신약 개발 임상시험

왜 한국에서는 안될까. 업계는 세제 혜택, 서양인(Caucasian) 데이터 확보 등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그 원인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찾을 수 있다. 식약처에 첨단 신약 초기 임상시험 적절성을 심사할 능력과 경험, 책임감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더 큰 이유로 분석된다.

일례로 모 바이오텍 기업이 항암 세포치료제 개발을 필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다. 필자는 미국 규제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사전 신약승인신청(pre-IND) 미팅을 진행하고 비임상시험(안전성 동물시험)과 1상 임상시험 계획을 세우는 방향으로 제안했다.

이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식약처 당국자도 알고 제약-바이오 업계도 알 것이다. 식약처에서는 선진국에서 급속도로 일고 있는 신약개발의 파괴적 혁신에 대응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식약처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신약 초기임상 선진국 유출을 막을 길이 없다.

해외서는 ‘안전성’이 최우선…한국은

모든 신약후보물질은 유해하고 효과가 없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 가정은 임상시험과정을 통해 신약물질 안전성을 관찰하고 유효성을 검증한 후에야 비로소 기각된다. 신약물질이 안전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확보되었을 때만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안전성이다.

안전성은 임상시험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지 관찰에 의해서만 판단된다. 반면 유효성은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 가능하다. 임상시험은 의사 영역이다. 가장 기본적 윤리 기준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서 - 환자를 사랑으로 진료한다(First, do no harm)’를 서약한 의사는 환자를 해로운 물질에서 보호하는 의무를 지켜야 한다.

미국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의약품 안전성이 일차적이고 유효성은 이차적이다. 이유가 있다.

미국 FDA는 불량 식품, 불량 의약품, 불량 화장품, 불량 의료기기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1930년 설립됐다. 1937년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설파닐아미드(Sulfanilamide)와 부동액에 딸기향을 첨가한 감염치료제를 복용한 아이들 107명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FDA는 1938년 의약품 안전성 검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효성 검증은 24년 후인 1962년 요구됐다.

韓 신약 개발 위기는 안전성 평가부터

신약 안전성은 두 단계로 관찰된다. 첫 단계는 임상시험을 위한 안전성이다. 둘째 단계는 판매허가 후 소비자에게 관찰되는 안전성이다. 우리 신약개발 위기는 임상시험을 위한 안전성 평가에서 시작된다.

신약후보물질 임상시험을 위한 안전성 판단에는 최고 수준의 과학이 요구된다. 각종 조치를 취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신약 임상 중 각종 사고가 발생한다. 후진국에서는 이런 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고 처벌에만 집중하다.

필자가 2004~2005년 1년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임상시험 강의를 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만약 임상시험 중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지느냐?"였다. 우리나라가 신약 개발에서만큼은 후진국인 이유다.

임상시험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두려움과 책임을 느껴 식약처는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 임상시험 승인 허가를 지연시키거나 반려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이미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신약물질도 안전성 데이터를 추가로 요구하거나 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국내 임상시험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식약처는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라고 한다. 미국이 신약개발 선진국이라는 사실 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첨단 신약후보물질 안전성을 판단할 역량과 경험이 우리 식약처가 보강해야 할 전문성이다.

식약 개발 선진화 위해 후진 인정부터

신약임상시험 허가업무와 관련해 식약처는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규제와 과학 기능이다. 규제기능은 임상시험에 관련한 법적행정적 절차에 관한 기능을 말한다. 신약개발 선진화를 위해 첫째 우리 식약처는 미국 FDA나 유럽 EMEA 보다는 후진임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식약처 규제기능과 과학기능 가운데 책임질 능력이 없는 과학기능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능력이 있는 기관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신약물질 초기 임상 메카가 된 호주는 신약물질 임상시험의 과학적 적절성 여부를 결정하는 기능이 대학병원에 속한 윤리위원회가 갖는다.

일본은 해당분야 최고전문가(Key Opinion Leader)들이 임상시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우리나라 대학병원도 호주 대학병원에 못지않게 최첨단 신약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적절성을 판단할 과학적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전문가들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한국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첨단 신약물질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한다. 그들이 연구개발한 신약후보물질 임상시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은 식약처 관료가 아니라 임상시험을 실제로 책임질 우리나라 굴지의 의과대학 의사와 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제도를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 첨단 신약물질 초기임상은 선진국으로 계속 유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신약개발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식약처 관료들을 첨단신약물질 임상시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과학적 기능과 업무로부터 해방시키는 과감한 규제 혁파가 위기에 처한 우리 신약개발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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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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