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실리콘밸리 베이비' 태미 남

입력 2020.01.14 06:00

태미 남 픽사트 최고운영책임자 이메일 인터뷰
비키부터 픽사트까지 실리콘밸리 성공 경영자
닷컴, 동영상, 소셜 두루 겪은 몇 안 되는 전략가
"의사소통은 인간 본성, 소셜 성공할 수 밖에"
창업과 경영은 다른 영역, 구분 잘해야 성공
아시아시장에 먹히지 않으면 글로벌시장도 없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업기질 꿈틀
"저만의 아이템으로 꼭 창업하렵니다."

1970년, 한국인에게 미국은 ‘희망의 땅’이었다. 이민 열풍이 불었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바뀌어 아시아계 이민 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판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이다.

태미 남(Tammy Nam)의 부모도 그해 이렇게 꿈을 좇아 미국으로 갔다. 다른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더 큰 세상을 만나게 하겠다는 꿈이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새 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성공했다.

태드 남 픽스아트 최고운영책임자는 부모의 성공과 실리콘밸리 성장을 동시에 지켜보며 자랐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업 기질과 세계 유수 인재가 모인 실리콘밸리가 만나 그 또한 성공한 경영자가 됐다. 미국 스타트업 업계 유명인사다. 비키부터 픽스아트까지 실리콘밸리 유망 스타트업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워낸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그와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태미 남(Tammy Nam) 픽스아트 최고운영책임자 겸 최고마케팅책임자./ 태미 남 제공
그는 애당초 기술기업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이루지 못했다. 졸업한 1995년 당시 미국 언론 시장은 벌써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 대신 그는 PR, 콘텐츠전송네트워크, 광고컨설팅 업체에서 일했다.

2000년 전후로 닷컴 열풍이 불었다.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등 1세대 인터넷 기업 창업자들도 대학생이던 시절이다. 업계 특유의 빠른 혁신과 의사결정 속도, 활력 넘치는 분위기가 태미 남을 사로잡았다. 그의 삶이 달라졌고 계속 이 바닥에 머물게 했다.

"당시 기술업계는 다른 산업에 비해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혁명'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어요. 지금은 전설이 된 인터넷 1세대 창업자들과 어울리다보니 저도 일이 너무 신나고 좋았어요. 그때가 23살이었네요.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습니다. 혁명 같았던 당시 실리콘밸리의 벤처 열기에 중독될 수 있어서요."

산업이 워낙 빨리 성장하다보니 잘하면 누구에게도 인정받는 실리콘밸리에 매력을 느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에 차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는 기술자 사회입니다. 차별이 분명 있었죠. 개발자와 비개발 직종 사이에요. 마케터와 경영직은 주류가 아니었어요." 그는 기술 개발자가 아니었다.

"동영상 스트리밍, 기존 사업모델 작동않는 완전 새로운 시장"

실리콘밸리 개발자와 비개발자간 차별이 없는 분야가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콘텐츠다.

그는 콘텐츠전송기술업체 아카마이와 PR 및 광고 분야 경력을 인정받아 2006년 슬라이드(Slide)에 합류했다. 페이팔 초기 창업자인 맥스 레브친이 만든 회사다. 개인이 만든 미디어콘텐츠를 공유하는 소셜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태미 남은 슬라이드에서 소셜 미디어에 눈을 뜬다. 2년 후 소셜미디어 기반 독서 서비스인 스크립(Scribd)으로 옮겼다. 두 기업에서 소셜미디어서비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히 동영상에 주목했다. 그렇게 태미 남은 2011년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비키(Viki) CEO로 선임됐다.

"소셜미디어를 넘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알고 싶었어요." 그는 당시 합류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전통적인 수익모델이 작동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에요. 워낙 새로운 분야다보니 이게 잘 될거란 확신도 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장기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비키는 유럽과 미주 지역 영상 콘텐츠가 중심인 넷플릭스 등과 달리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영상 콘텐츠에 집중한다. 한국어와 중국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아시아 콘텐츠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각국 방송국이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에 일반 이용자가 직접 자막을 만들어 달도록 했다. 한국어를 포함한 150여개 언어 자막 덕분에 세계인들은 아시아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2007년 비키 서비스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관심사 기반 소셜미디어 서비스인 빙글(Vingle)을 운영하는 문지원 대표다. 그 역시 한국인이다.

비키는 넷플릭스처럼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눈길을 모았다. 대표작이 드라마월드(Dramaworld)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한국 서울을 배경으로 한국과 미국, 중국이 합작해 만든 드라마다. 한국 TV드라마 팬인 미국 여대생이 한국 드라마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줄거리다. 중간중간에 배우 한지민 등 한류 스타가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는 비키의 사업모델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회사 구조가 복잡했다. 기술 개발자들은 싱가포르에 있는데 주요 사업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했다. 그는 "로열티를 주고 콘텐츠를 사오는 단순 라이센싱 모델로는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류 등 아시아 콘텐츠 열풍을 타고 비키는 아시아 콘텐츠계의 넷플릭스로 성장했다. 2013년 일본 대표 온라인 상거래 회사인 라쿠텐은 그 가능성을 보고 2억달러(2100억원)에 비키를 인수했다. 라쿠텐은 태미 남과 당시 경영진을 비키 인수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훌륭한 회사로 키우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고 설득했다. 매각 이후에도 태미 남은 2018년까지 비키에서 대표를 지냈다.

./ 픽스아트 앱스토어 설명 갈무리
"사진과 영상으로 대화하는 시대, 시각적 의사소통은 인간 본성"

그의 새 행선지는 지금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직을 맡은 픽스아트다. 사진과 gif, 이모티콘 등 시각화 도구가 새로운 소셜미디어 시대 핵심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픽스아트는 호브하네스 아보얀 대표가 만든 서비스다. 모바일로도 누구나 포토샵 수준의 다양한 이미지를 편집하고 만들 수 있어 ‘모바일 시대의 어도비(Adobe)’라고 불린다.

픽스아트(PicsArt) 합류 제안을 받았던 2018년 테미 남은 사실 독자적인 회사 창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픽스아트가 마케팅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전세계 1억명에 이르는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보유했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창업 준비를 멈추고 픽스아트에 합류를 결심했다.

"픽스아트에 합류하기 전 우리 집 아이들이 어떻게 소셜미디어를 쓰는지 눈여겨 봤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데 아이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친구들과 대화하더군요. 사진은 주로 픽스아트로 편집했고요. 기술 트렌드에 한 발 앞선 친구들이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는걸 보니 픽스아트가 곧 다가올 미래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창업을 접을만큼 픽스아트 사업모델 가능성을 믿었다. 그는 "사진과 동영상, gif가 소셜미디어 시대 핵심 도구"라며 "시각화 도구는 언어와 국가 장벽을 넘어 소셜미디어로 세계 이용자끼리 대화를 가능케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동굴에 그림을 그려 언어가 없던 시절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시각화 도구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인간 본성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소셜미디어부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소셜미디어 기반 이미지 편집 및 공유 서비스까지 ‘핫한' 기술 산업 트렌드를 두루 경험한 몇 안되는 마케팅 전략가가 됐다.

태미 남(Tammy Nam) 픽스아트 최고운영책임자 겸 최고마케팅책임자./ 태미 남 제공
실리콘밸리에서도"실패는 성공의 필수조건"

태미 남은 실리콘밸리를 ‘아메리칸 드림의 현대판’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모가 미국 땅을 밟았던 70년대 미국 땅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혁신가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무한한 혁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가 꼽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은 인재와 기술, 그리고 기존 질서를 모두 뒤집어엎겠다는 신념이다. 그는 이를 "기존 방식을 모두 폐기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혁신 근간에 실패가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누구도 자신의 상품이 시장에서 먹힐지 예상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해도 안된다. 그가 소셜미디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 소셜미디어 업계에 뛰어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벤처가 필패하는 조건은 따로 있다. 그는 팀 구성에 실패해 좌절한 벤처를 너무 많이 봤다.

"창업자라고 최고경영자 자리를 고집하거나 모든 사업 분야를 직접 관장하려고 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엔지니어 출신인 창업자가 경영을 계속 맡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보완하는게 맞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사업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또 있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반드시 염두에 두라는 조언이다. 전 세계를 아우르라는 게 아니다. 아시아만이라도 영역을 넓히라는 얘기다. 그는 "아시아 지역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회사는 미국 내에서도 회사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단언했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해외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다국적 인력을 고용해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픽스아트도 본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만, 기술 개발부서는 아르메니아에 있다. 인공지능(AI) 본부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에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직원을 고용했다.

태미 남은 성공한 경영자로 우뚝 섰지만 이제 또다른 도전을 준비한다. 저만의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이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할 생각이다.

"픽스아트 사업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은 창업 준비를 멈춘 상태지만 언젠가 나만의 회사를 만들 계획입니다." 유전처럼 물려받은 사업 기질이 이제 그의 속 안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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