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KT, LG유플러스와 인공지능(AI) 분야 ‘초(超)협력’ 가능성을 내비쳤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강자들이 미래 ICT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AI 초협력을 시작했는데, 국내 기업이 분절해 대응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단순 유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삼성전자, 카카오뿐 아니라 국내 이통사와도 과감한 초협력을 통해 장점을 키우고 시너지를 극대화하자는 의지가 담겼다.

이통3사는 서로 협력이 아닌 경쟁에 익숙하다. 통신, 미디어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피튀기는 경쟁을 펼쳐왔고, AI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SK텔레콤이 먼저 KT와 LG유플러스에 초협력의 공을 넘겼다. 이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이통업계에서는 조만간 큰틀에서 3사간 협력이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21일 박명순 SK텔레콤 AI유닛장은 "(AI 초협력과 관련해) 별도의 공식 발표를 준비 중이다"라며 "이통3사간 협력이 이뤄질지 확신할 수 없지만 논의 초기 단계를 밟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박정호 SK텔레콤 사장·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 각사 제공
왼쪽부터 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박정호 SK텔레콤 사장·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 각사 제공
박 사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빅스비(삼성), 누구(SK텔레콤), 기가지니(KT)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작다"며 "이를 모으면 (AI 기술) 수준이 빠르게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AI 분야 협력의 필요성은 삼성전자도 카카오도 동의하고, 제가 보기엔 다른 이통사도 동의하리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0에서 삼성전자, 카카오와 AI 초협력을 제안한 것에 이어 이통사에도 손을 내민 셈이다.

박 사장은 글로벌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초협력 제의를 구현모 KT 차기 CEO 내정자와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측에 이미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통3사 측은 이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피하지만 큰틀에서 논의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의 제의 여부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용 의사를 밝히는 데는 조심스럽다.

전홍범 AI·DX융합사업부문장은 "(AI 초협력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어도 아직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어 뭐라 얘기하기가 곤란하다"며 "신설된 부서 업무 파악 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고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제의에 대해 회사 내부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통3사간 초협력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도 있다. 이통3사는 모두 AI 분야에서 ‘유저’가 아닌 ‘선도자’가 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서로간 양보가 필요하다. 사업의 권리와 성과물을 놓고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SK텔레콤이 경쟁사이자 협력사였던 삼성전자와 카카오와 달리 사사건건 부딪친 이통사와 실제 초협력 단계에 이를 수 있을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박 사장은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초협력의) 체계를 잘 짜느냐가 중요한데, 서로의 권리는 가지고 공동의 성과물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사장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포럼에서 콘텐츠 분야에서 아시아 전체의 초협력을 제의했지만 KT에서 완곡한 거절을 한 바 있다.

김훈배 KT 뉴미디어사업단장은 2019년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에서 열린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박 사장의 제안을 공감하지만 시즌 만큼은 개별 전략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콘텐츠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초협력이) 되면 좋지만 시즌은 라인이 일본을 공략한 것처럼 하나하나 침투해 들어가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라며 "OTT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시아 국가에 진출 또는 기획사와 연합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두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