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지분 일부를 인수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엘리엇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다음 타깃으로 소프트뱅크를 삼았다고 우려한다. 반면 위워크 사태 이후 핵심 멤버 이탈과 비전펀드 모금 실패 등 잇따른 어려움을 겪은 소프트뱅크가 손정희 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으로 대항해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한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소프트뱅크 지분 3%를 획득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5억달러(2조9000억원)다. 엘리엇이 단일 기업에 투자한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조선DB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조선DB
‘기업 사냥꾼’ 엘리엇

엘리엇은 폴 엘리엇 싱어가 운영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주식을 사들인 이후 경영에 적극 간섭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 방식을 진행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엘리엇은 옛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이고, 양 사의 주식교환 비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결정됐다며 주주총회 소집 및 합병 결의를 막기 위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2016년 10월에는 삼성전자 이사회에 분사 및 특별배당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 일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2018년 4월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각각 매입한 뒤 두 회사의 합병과 고배당 등을 요구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AT&T와 이베이를 공격했다.

이 같은 사례를 이유로 업계는 소프트뱅크가 엘리엇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엘리엇은 특히 부도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국가를 타깃으로 삼고, 이들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끌어올리는데 능한 펀드로 알려졌다. 2002년 엘리엇은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국채를 대량 매입해 원리금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여 결국 아르헨티나를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악시오스는 "수년 단위 단기 투자수익에 집중해온 행동주의 성향 헤지펀드가 1세기 이상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목표를 내건 소프트뱅크를 어떻게 바꿔놓을지가 관전 포인트다"라고 풀이했다.

위워크 사태로 위기 맞은 소프트뱅크

업계가 엘리엇이 소프트뱅크를 다음 타깃으로 삼은 것 같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위워크 사태를 겪으며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소프트뱅크는 위워크 사태를 겪은 후 지난해 3분기 14년 만의 첫 적자를 냈다. 4분기에도 전년 대비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통신은 정보분석업체 리피니티브(Refinitive)가 집계한 작년 4분기 소프트뱅크 영업이익 애널리스트 평균 추정치를 근거로 3450억엔(약 3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가량 감소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엘리엇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의 위워크 투자 실패를 계기로 소프트뱅크 지분을 적극 늘려왔다. 엘리엇은 소프트뱅크 지분 인수 배경으로 "소프트뱅크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매우 저평가돼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보유한 알리바바와 미국 통신업체 스프린트, 승차 공유업체 우버 등의 기업가치를 모두 합치면 2100억달러(249조6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은 890억달러(105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미래에 투자한다더니…헤지펀드 엘리엇 손잡은 소뱅

외신은 엘리엇이 소프트뱅크 경영에 적극 개입해 회사 가치를 끌어올리려 한다고 풀이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프트뱅크가 위워크 구조조정에 나선 것처럼, 엘리엇은 소프트뱅크가 다른 투자사 수익성을 끌어올리면 소프트뱅크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거란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이에 소프트뱅크가 이전과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일 걸로 전망한다. 이미 소프트뱅크는 위워크와 우버, 인도 여행업체 오요, 줌피자, 물류 스타트업 플랙스포트 등 주요 투자사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소프트뱅크 허리띠 졸라매기 행보가 더욱 빨라질 거란 전망이다.

실제 엘리엇은 지분 인수를 조건으로 소프트뱅크에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을 공개할 것과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처럼 소프트뱅크가 다수를 보유한 일부 포트폴리오 투자지분을 청산해야 한다는 조건도 걸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엘리엇은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2호 운영도 미룰 것도 제안했다. 특히 SVF1호에 출자한 포트폴리오사 수익성이 담보되기 전까지는 추가 투자를 단행하지 말라고 했다. SVF2호 펀드는 지난해 인공지능(AI)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 목적으로 조성됐지만 소프트뱅크는 목표액의 절반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조건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우려한다. 소프트뱅크가 엘리엇과 손잡은 것이 재기 발판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그 동안 소프트뱅크가 성장한 배경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지금까지 투자업계 ‘큰 손'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비결은 단기 수익이 아닌 10년 뒤 시장을 흔들 스타트업 잠재력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반면 엘리엇은 철저히 단기 수익을 목표로 하는 헤지펀드다. 완전히 다른 성격을 보인다.

월스트리트는 "엘리엇은 과거에도 투자 대상 기업의 주가 상승을 위해 경영 개선을 종종 요구한 만큼 이번에도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다"라며 "다만 손 회장이 보유한 소프트뱅크 지분 22%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