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재택근무가 확산된다. 당장 코로나19 감염 공포에 따른 것이지만 52시간 근무시간 단축,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 등과 맞물려 앞으로 경영과 노동의 상수(常數)가 될 수 있다. 이왕 받아들일 것, 슬기롭게 하자는 취지로 재택근무 현장을 생생하게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주]

직장인 김현진(가명)씨는 26일부터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자 회사가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김씨는 사흘을 해보니 재택근무 장단점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하루 2시간 넘게 잡아먹는 출퇴근 시간이 줄어 여유가 생겼다. 쓸데없이 긴 회의나 잡담 시간도 줄었다.

불편함도 있다. 5살, 3살 아이들의 아빠다. 집에 있으니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보챈다. 업무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로 나갈까’ 생각도 든다.

김씨는 "컴퓨터를 켜고 일을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놀아달라, 와서 이것 봐달라 등 이것저것 요구한다"며 "업무상 통화를 많이 하는데 그 때마다 시끄럽게 굴어 통화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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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 근무가 확산된다. 수면바지를 입고 편하게 집에서 혹은 근처 카페에서 원격 협업 툴에 접속해 근무하는 이들이 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업들은 스마트워크 도입 범위를 더욱 넓힐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언제 어디서나 빠른 업무 대응을 할 수 있는 협업 솔루션 도입 기업도 늘고 있다.

협업 솔루션은 PC화면이나 필기 등 화면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대 수십명까지 동시에 영상미팅을 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이외에 메신저와 메일, 캘린더, 드라이브, 주소록 서비스 등 업무에 필요한 기능을 지원한다.

협업 툴 솔루션 기업은 마케팅 차원에서 무상으로 자사 서비스를 지원하며 마케팅에 나선다. 웍스모바일은 업무용 협업도구 라인웍스 라이트(Lite) 상품을 6월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NHN도 중소기업 대상으로 자사 협업 서비스인 토스트 워크플레이스 두레이를 향후 3개월 간 무료로 지원한다. 국내 원격솔루션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알서포트도 금융권과 공공, 학교 등에 무상으로 자사 솔루션 리모트뷰와 리모트 미팅을 무상 제공하고 나섰다.

실제로 네이버 자회사 웍스모바일에 따르면 모바일 협업툴 라인웍스 사용 트래픽은 1월 대비 트래픽이 5배 증가했다. 영상통화와 영상화면 공유기능 사용량도 1.5배 이상 늘었다.

"원하는 장소 선택할 수 있어" 효율성 가장 큰 장점

재택근무와 스마트워크를 첫 경험한 이들은 일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뜻밖에 업무 자율성과 효율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일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업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각종 미팅을 줄이거나 출퇴근 등에 쏟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일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을 선택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어디에 있든 필요할 때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 내 업무를 하면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근무 중인 한 직원도 "쓸데없는 미팅을 하지 않아도 돼 좋다"고 덧붙였다.

특히 편하게 일할 환경을 장점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박미현(가명) 씨는 "눈치보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좋다"며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피곤하면 잠시 편하게 쉬다가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에 바이러스에 혹 노출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24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한 직장인 송기정(가명) 씨는 "식당가서 밥먹는 게 제일 불안했는데 편하게 집에서 먹을 수 있게 됐다"며 "콩나물 시루 같은 대중교통에서 혹시나 감염자와 같은 공간에 있을까 불안했던 마음도 사라져 안심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놀아달래요" "강아지가 자꾸 와서 안겨요"

단점도 있다. 당장 스마트워크를 도입하기엔 일과 생활 공간 분리를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들이 꼽는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은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집에 가족이 있거나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가 많아 회사보다 확실히 업무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워킹맘 장성윤 씨는 "유치원이 휴업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는데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됐다"면서도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김현진씨의 경우처럼 아이들이 엄마를 계속 찾기 때문이다.

원격 업무와 협업이 불편하기도 한다. 주요 업무와 사내 시스템 모두 회사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당장 협업 툴로 대체가 어렵다는 목소리다.

특히 금융권을 비롯해 대기업은 대외비를 이유로 외부에서 사내 시스템에 접속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상도 씨는 "업무를 위해 외부에서 접속할 경우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한정됐다"며 "아직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근무 중인 한 직장인은 "업무에 참고해야 할 자료들이 회사에 있어 어차피 출근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실제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직원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일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자가 꽤 많다.

무엇보다 구성원에 신뢰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격 툴 솔루션 같은 물리적 환경 전환도 중요하지만, 결국 회사와 구성원 서로가 스마트워크로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는게 핵심이다. 신뢰는 대화 방식이 대면소통이 아닌 전화와 메신저로 대체된 환경에서 더욱 중요하다.

직장 정보 공유 플랫폼 잡플래닛에 따르면 해당 기업 종사자는 게시판 등에 "회사가 직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신뢰 문제를 꼽는다. 한 기업 종사자는 "당장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한다며 별도 지원없이 출근시키고 출퇴근 시간이라도 조절해달라는 의견은 무시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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