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23) 그리스인 조르바 ③… 삶의 비밀을 드러내는 말과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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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3.25 05:00
이번 주 ‘#하루천자’ 글감은 해외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Vios ke politia tu Aleski Zorba) 중에서 다섯 대목을 추천받아 게재합니다. 고(故)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열린책들 출판본을 참고했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다음으로 꼽은 사람이 조르바입니다. ‘위대한 자유인’ 조르바를 즐거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A4 크기의 종이에 천천히 필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하루천자 태그를 붙여 올려주세요. /편집자 주

2017년 제작된 영화 <카잔차키스>(Kazantzakis) 포스터(왼쪽). 그리스의 야니스 스마라그디스(Yannis Smaragdis)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카잔차키스의 일대기를 그렸다. 오른쪽 사진은 영화 속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함께 한 장면.
그리스인 조르바 ③
(언론인 출신 손관승 작가가 추천한 #하루천자 / 글자수 978, 공백 제외 731)

전날 우리 둘은 오두막 앞에 앉아 있었다. 포도주 한 잔이 돌았을 때 그가 놀란 듯이 나를 돌아다보았다.

"두목, 이 빨간 물이 대체 뭐요? 말해 봐요. 늙은 그루터기에서 가지들이 뻗어요. 거기 처음에 달리는 것은 시큼털털한 구슬 뭉치일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이것을 익히면 마침내 꿀처럼 달콤한 물건이 되지요. 이게 포도라고 하는 겁니다. 이 포도를 짓이겨, 우리가 술고래 성 요한의 날(주, 핼러윈에 비견되는 그리스의 여름 축제 클리도니스를 일컫는 것으로 6월 24일에 열린다) 열어 보면, 아! 포도주가 되어 있지 뭡니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빨간 물을 마시면, 오, 보라, 간덩이가 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하느님께 시비를 겁니다. 두목, 말해 봐요.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매일 밤 조약돌 위에 누워 조르바를 애타게 기다렸다. 나는 대지의 장부(臟腑)에서 불쑥 튀어나와 느슨한 몸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를 발견하곤 했다. 나는 그의 모습, 고개를 세우거나 떨어뜨리는 것, 팔을 움직이는 모양으로 그날 일의 성과를 알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 나도 그와 함께 갔다. 나는 인부들을 감독했다. 나는 다른 양식의 인생을 살아 보려고 노력했고 실제적인 일에 관여하고 내 수중으로 떨어진 인적(人的) 자원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들과 더불어 오래 그리던 기쁨을 맛보려 했다. 나는 낭만적인 구상을 하기도 했다. 갈탄광이 성공했을 때 얘기지만, 일종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갖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한 형제처럼 지낸다. 나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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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은 (사)한국IT기자클럽, (주)네오랩컨버전스, (주)비마인드풀, (주)로완, 역사책방과 함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은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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