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39) 리진 시선집 ①…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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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4.13 04:00
3주 차를 맞는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1주일에 5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리진 시인의 시선집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창작과비평사, 1999)를 골랐습니다. 리진은 1930년에 북한 함흥에서 태어나 김일성대 영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1년 모스크바로 유학갔다가 러시아에 눌러앉아 작품활동을 한 시인입니다. 평생을 이국땅에서 보낸 시인의 우리말 작품을 필사하면서 이전과 다른 독서 경험을 해 보세요. /편집자 주

시인 리진은 소련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평생 무국적자로 지내며 일기를 쓰듯 수많은 시를 썼으며, 1989년에 알마아타에서 시선집 《해돌이》를 발간했다. 1996년에는 한국에서 약 300편의 시를 모아 《리진 서정시집》(생각의 나무)을 발간했으며, 1999년에는 창작과비평사에서 시선집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를 펴냈다. 1980년대말부터 한국의 문예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직접 한국에 다녀가기도 했지만 리진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적으며, 그의 시를 접해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2004년 경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글자수 497, 공백 제외 403)

나의 먼 길에는
마음으로도
얼굴로도 아름다운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나는 나의 길의
풀도 나무도 벌레도 새도 짐승도
산도 강도 벌도
모두 모두 귀중하였다.
내가 가꾼 꽃도
내가 기른 짐승도
모두 모두 나의 크나큰 기쁨이었다.
하늘은 나에게
너그러웠다.

그런데
때로 끝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황당한 상실의 예감에
숨이 막혔다.
소리 없는 통곡이란 무엇인지
나도 알았다.
잃을 것이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았다.
하늘은 나에게 오히려
너그럽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부터
나는 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들인 그 모든 정은
그 무서운 아쉬움이 아니라
마음의
마지막 안정의 터라는 것을.
하늘은 나에게 정말
너그러웠다.

이 땅에
잘난 아들 장한 아들을
그렇게도 많이 낳아놓고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동족상잔의 수라장에서도
내 총 앞에
겁에 찌그러진 얼굴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귀중한 이들의 마지막 길을
바래주지 못한 크나큰 죄가 있는 대신에
사람을 묻어주지 못하게 한 죄는
나에게 없다.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하루천자 캠페인은?

IT조선은 (사)한국IT기자클럽, (주)네오랩컨버전스, (주)비마인드풀, (주)로완, 역사책방과 함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은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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