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중국산보다 1억 비싸…가격 경쟁력 없어
올해 보조금 지원 대상 40종 중 중국산 25종 달해

전기버스 제조사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저가 중국산에 밀려 올해 수주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자국산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비관세 장벽을 세웠지만,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소지가 있다며 우리 산업 보호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환경부 인증을 통과한 전기버스는 40여종이다. 지자체 보급 일정에 맞춰 친환경차 보조금을 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올해 BYD, 포톤, 북경모터스 등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투입하는 전기버스만 25종에 달한다. 국산 전기버스는 현대차와 우진산전, 자일대우, 에디슨모터스 등 15종이다.

 올해 한국 시장에 투입되는 중국산 전기버스가 25종에 달할 전망이다. 사진은 중국 대표 전기버스업체인 BYD e버스-12. / BYD코리아 홈페이지 발췌
올해 한국 시장에 투입되는 중국산 전기버스가 25종에 달할 전망이다. 사진은 중국 대표 전기버스업체인 BYD e버스-12. / BYD코리아 홈페이지 발췌
올해 정부는 승용차 6만5000대, 트럭 등 상용차 7500대, 버스 650대, 이륜차 1만1000대 등 총 8만4150대에 달하는 전기차 보급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버스 물량이 크지는 않지만 정부 보조금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중국 업계가 적극 나선 상황이다.

올해 전기버스에는 환경부 보조금 최대 1억원과 지자체별 추가 보조금 최대 1억원 등이 배정됐다. 여기에 노선버스 등에 투입되는 전기버스에 국토교통부가 저상버스 보조금 명목으로 약 950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전기버스 한대에 최대 3억원의 세수가 투입되는 셈이다.

국산 전기버스의 가격은 4억원대 초중반, 중국산은 평균 3억원대다. 최대 3억원의 보조금 지원 규모를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국산과 중국산의 실제 가격 차이는 최대 10배에 달할 수 있다. 대개는 2억원대 지원을 받아, 2~3배 차이가 발생한다는게 업계 전언이다. 우리 기업 버스가 가격적으로 설 자리가 없다.

대당 최대 3억 보조금 지급…중국산 전기버스에 수백억 지원 전망
중국 정부는 비관세 장벽 세우지만…우리 정부 ‘WTO 위반' 우려

국토부 통계자료 등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버스는 2018년 61대, 2019년 146대 등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조금 액수 등을 고려했을 때 지난해만 중국 자동차 업체들에게 240억~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한다.

 올해 전기버스 40종에 보조금이 지급될 전망이다. / 환경부 저공해차 통합누리집 발췌
올해 전기버스 40종에 보조금이 지급될 전망이다. / 환경부 저공해차 통합누리집 발췌
문제는 중국 정부가 ‘비관세 장벽'으로 자국 전기차 업체들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6년부터 공업신식화부(공신부)가 승인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공식적으로는 전력효율, 주행가능거리, 안전성 시험 등 기준을 통과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2016년부터 2년 동안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목록에 한국은 물론 일본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한 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연중 우진버스판매 대표는 "국산 전기버스는 중국산보다 보조금 지급 전 가격이 1억원 가까이 비싼만큼 가격경쟁이 힘든 상황이다"라며 "주요 부품인 배터리 등에서 원가 차이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전기버스 등 친환경차 분야는 환경규제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 육성 등 다방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경제논리로만 접근하다가는 전기버스를 비롯한 국내 친환경차 업체들이 위기에 몰릴 것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국내 친환경차 분야 육성을 위해 보호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친환경차 보급에 국민 혈세을 투입하는만큼, 친환경차 보조금을 국내 산업 육성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 업계는 친환경차 보조금 지급 기준에 환경성과 성능뿐만 아니라 국산부품 비율을 포함시키거나, 국내 생산을 유도하는 방식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입장은 다르다. 친환경차 지원에 국산과 수입산에 차별을 두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배 소지가 있다는 것.

박륜민 환경부 대기미래전략과장은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국 배터리 탑재 여부를 고려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공개적으로 국산과 수입산을 차별한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라며 "(우리 정부가 배터리나 부품 생산지를 보조금 지급 기준에 포함할지 여부는) WTO 가맹국 간 차등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그는 "물량은 늘고 있지만,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다"며 ‘문제 없다’는 반응이었다.

국산 전기버스, 지자체 기준 강화 등 보호 가능성 ‘충분’
전기버스 업계 "국내 산업 보호 의지 보여달라"

익명을 요구한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라며 "우리 정부가 전기버스 등 국내 친환경차 산업을 보호하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국산 전기버스가 중국산보다 성능, 정비 편의 등에 강점이 있는만큼 지원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국산 제품에 얼마든지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울시의 예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배터리와 전기모터 등 주요부품 보증기간(9년), AS처리능력, 차량 성능, 가격 등 자체적인 표준평가모델을 만들어 보조금 지급 대상을 평가한다. 2019년 서울시가 보급한 전기버스는 114대, 이중 중국산은 ‘0대'였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환경부 지침을 따른다. 환경부의 방침에 동떨어지게 수입사를 배제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무리다"라며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전기버스를 운영할 운수업체들이 사후관리에서 앞서는 국산 위주로 선택을 했으며, 중국 업체들이 성능기준을 통과했지만 운수업체들이 구매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산과 중국산 차별을 할 수 없다는 방침도 이제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 무역을 위한 WTO 규정을 준수해야 하지만 중국처럼 이를 위반하는 나라까지 호혜적으로 대해야 할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중국산과 중국 이외의 수입산을 달리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중국은 산업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만 유리하게 적용해 세계의 지탄을 받는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8년 자국 3748개 상장기업 가운데 90% 이상인 3544개사에 무려 1562억위안(약 26조원)의 산업 보조금을 지급했다. 산업보조금 수혜 상위기업 10개 중 4개사가 자동차 회사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지난 1월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산업보조금 철폐를 요구했다. 철폐 대상 1순위가 바로 전기차 보조금이다.

중국 정부가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 보조금 지급 차별을 고집하는 것은 자국 산업 육성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반면 우리 정부의 전기차 보급사업엔 환경 보호만 보일 뿐 이러한 산업육성 정책이 빠져 있다.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차별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산 부품을 탑재할 경우엔 혜택을 줘야 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정부가 걱정하는 WTO 규정 위반 소지도 중국산 전기차만큼 예외로 몰아가면 된다. 중국은 엄연히 국산과 수입산에 보조금 차별을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의 전기차를 들여오변서 아무런 규제나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한국 업체들만 고사시키는 꼴이다. 그러나 "제발 역차별을 막아달라"는 산업계 목소리는 대중국 관계를 중시하는 현 정부 기조 아래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inbiz.com
이광영 기자 gwang0e@chosi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