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1주일에 5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의 《천변풍경》을 골랐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활동하며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썼습니다. 한국전쟁 중 월북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로 최근 재조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1930년대 서울의 풍속과 세태를 묘사한 《천변풍경》을 필사하면서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화가 민정기씨가 2019년 그린 ‘박태원의 천변풍경 3’. 화가는 구보 박태원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뿐 아니라, 청년시절 구보를 그림 속 손님으로 등장시켰다.
화가 민정기씨가 2019년 그린 ‘박태원의 천변풍경 3’. 화가는 구보 박태원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뿐 아니라, 청년시절 구보를 그림 속 손님으로 등장시켰다.
천변풍경 ② (글자수 1019, 공백 제외 758)

민 주사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숫제 덥수룩할 때는 그래도 좀 덜하던 것이, 이발사의 가위 소리에 따라 가지런히 쳐지는 머리에, 흰 털이 어째 더 돋뵈는 것만 같아, 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오늘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근년에 이르러 이발소 의자에 앉을 때마다 늘 느껴 온 것이지만, 그 희끗희끗한 머리 터럭으로, 아무리 싫어도 자기 나이를 헤어보게 되고, 그와 함께 작년에 얻어 들인 안성집과 사이의 연령의 현격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않이 고통거리인 것이다. 민 주사는 올해 이미 천명(天命)을 알았고, 관철동에 살림을 시키고 있는 그의 작은 마누라는, 꼭, 그 절반인 스물다섯 살이었다.
(중략)

가운데 다방골 안에 자택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바로 지척 사이인 광교 모퉁이 큰길 거리에서 포목전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점에 나왔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신사는, 언제고, 골목에서 나와 배다리를 지나 북쪽 천변을 광교에까지 이르는 노차를 택하였다. 까닭에, 광교와 배다리 사이 북쪽 천변에 있는 이발소 창으로, 소년은 언제든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조석으로 대한다. 그리고 대할 때마다 은근한 기쁨을 갖는다. 그 기쁨과 함께 어느 한 개의 기대를 갖는다. 이 소년이 아무에게도 설파하지 않고, 혼자 마음 속으로만 이 점잖은 포목전 주인에게 갖는 기대라는 것을 아주 이 기회에 말하면, 그것은 신사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중산모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소년의 관찰에 의하면, 그의 중산모는 그의 머리 둘레에 비하여 크도 적도 않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사는, 결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깊이 쓰는 일이 없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그것을 머리 위에 사뿐 얹어놓은 채 걸어다녔다. 어느 때고 갑자기 바람이라도 세차게 분다면, 그의 모자가 그대로 그곳에 가 안정되어 있을 수 없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소년은 그것에 적지않이 명랑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모든 기대가 그러한 것과 같이, 이것도 그리 쉽사리 실현되지는 않았다……

* 단어 풀이
- 다방골 : 청계천로와 남대문로 변에 위치한 중구 다동(茶洞)에 있던 마을. 조선시대 조정의 茶禮를 주관하던 관청인 茶房이 있었다고.
- 배다리 : 舟橋. 종로구 배오개길과 청계천 사이에 있던 다리.
- 광교 : 광통교(廣通橋).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연결되는 도로에 놓여진 다리로, 조선시대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들 중 가장 컸다.
- 노차 : 노선(路線).
- 중산모 : 中山帽. 꼭대기가 둥글고 높은 서양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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