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49) 천변풍경 ④… 이쁜이 시집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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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4.24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구보 박태원(1909~1986)의 대표작 《천변풍경》과 또다른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1930년대 서울의 풍속과 세태가 파노라마 사진기로 찍듯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보의 외손자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편집자 주

신랑 박태원과 신부 김정애의 결혼사진(왼쪽). 1934년 10월 27일 다옥정(지금의 중구 다동 7번지, 구보의 생가)에서 열렸다. 이 결혼식에는 구보의 친구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 사인을 남겼다. 오른쪽 위는 화가 안석주, 오른쪽 아래는 시인 김기림의 사인.
천변풍경 ④ (글자수 918, 공백 제외 681)

음력 삼월 중순, 내일 모레 창경원의 야앵이 시작되리라는 하늘은, 매일같이 얕게 흰 구름을 띄운 채, 훤하게 흐리다. 사람들의 마음이 애닯게도 들뜨려 할 때, 배다리 골목 안, 최 장님 집에서는, 그 건넌방을 빌려 든 이쁜이네에게, 오늘 크나큰 경사가 있다 해서, 이른 아침부터 좁은 집 안에 사람이 들끓었다. 작년 가을부터 말이 있어 오던 이쁜이가, 기어코 이날을 기약하여 아랫대 강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다.

가지고 갈 것이라고는 칠 원에 사들인 조그만 머릿장 하나, 고등 문화견 금침 한 벌. 선치받은 인조견 치마 저고리 두 벌. 그리고 다음은, 값싼 경대와 반짇고리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으나, 그것도 없는 사람 눈에는 퍽이나 장하여 보였다.
(중략)

신랑은 예정보다도 한 시간이나 늦게, 거의 새로 한 점이나 되어서야 왔다. 신부 집보다는 나아도, 역시 그다지 넉넉지는 못한 신랑 집의 일이라, 제법 예라고 갖추는 수 없이, 신랑은 평복을 한 채, 기러기 아범으로 나선 친구 한 명과, 남치마를 얻어 두르고 보자기에 사모관대를 싸서 머리에 인 옆집 계집 하인 하나를 데리고, 골목을 걸어 들어와, 미리 정하여 두었던 대로, 바로 한 이웃집 문간방에 가 들어앉아, 그곳에서 옷을 벗고, 사모관대를 하였다. 신부의 당의나 한가지로, 그것은 일 원짜리 세물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냥 평복과는 비길 수 없어, 역시 그만한 위의와 경건한 무엇이 그 예복에서 느껴졌다.
(중략)

그러자 대문간에, 갑자기 우락부락한 젊은 놈 말소리가 들렸다. 거지들의 둘째 대장이라는 녀석이, 바로 잔칫집이라고 달려든 것이다. 이 구차한 집에 대체 무엇을 얻어먹으러 왔느냐고, 이쁜이 어머니는 그 주근깨 투성이 조그만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입이 아프게 말하였으나, 끝끝내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수 장국에다 한 푼의 오십 전 은화를 얹어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 단어 풀이
- 야앵 : 夜櫻. 밤 벚꽃놀이.
- 아랫대 : 서울 성안의 동남쪽 지역을 이르던 옛말. 동대문 쪽에 해당된다.
- 문화견 : 바둑판무늬 모양으로 짠 천.
- 세물 : 貰物. 돈 주고 빌린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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