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62) 필사해 보세요, 노천명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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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09 04:00
주말 ‘하루천자’ 글감은 1930년대 시단에 등장, 방송인·기자로도 활동했던 노천명(盧天命, 1911~1957)의 시를 골랐습니다. 일제 말기에 다른 많은 문인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에 동조, 문학과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습니다. 해방 뒤에는 잠시 좌익단체 ‘조선문학가동맹’에 이름을 올렸으나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이력과 6·25 때 남아있던 서울에서의 부역 때문에 ‘좌익 분자’로 20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가 문인들의 진정 덕분에 석방됩니다. 휴전 후 강의와 창작을 이어가다가 재생불량성빈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꼿꼿하다 못해 오만하다고까지 여겨진 성격의 소유자로 일생 동안 고독하게 지낸 노천명의 아래 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춘향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투리의 말맛을 살려 음미해 보세요. /편집자 주

친일파 시인으로 알려진 노천명(왼쪽 사진)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시집 《창변》(오른쪽 사진)을 내고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시집 뒷부분에는 친일시가 아홉 편 실려 있었는데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뒷부분의 친일시 부분만 뜯어내고 그대로 판매하고 만다. 전쟁 말기 상황에서 미처 배포하지 못하고 쌓아놓고 있던 시집을 땅속에 묻거나 태워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기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춘향(春香) / 노천명

검은 머리채에 동양여인의 ‘별’이 깃들이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실라우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탁탁 치고 꼬끼오 하면 오실라우
계집의 높은 절개 이 옥지환과 같을 것이오
천만 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할랍디어’
옥가락지 위에 아름다운 전설을 걸어놓고
춘향은
사랑을 위해 형틀을 졌다

옥 안에서 그는 춘(椿)꽃보다 더 짙었다

밤이면 삼경을 타 초롱불을 들고 향단이가 찾았다
춘향 ‘야이 향단아 서울서 뭔 기별 없디야’
향단 ‘기별이라우? 동냥치 중에 상동냥치 돼 오셨어라우’
춘향 ‘야야 그것이 뭔 소리라냐―
행여 나 없다 괄세 말고 도련님께 부디 잘해 드려라’

무릇 여인 중
너는
사랑할 줄 안
오직 하나의 여인이었다

눈 속의 매화 같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붉은 사랑을 뱉어버리지 않았다
한양 낭군 이도령은 쑥스럽게
‘사또’가 되어 오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 1945년 2월 노천명 제2시집 《창변(窓邊)》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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