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81) 날개 ①…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절대적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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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01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전위(前衛) 문학가 이상(李箱, 1910~1937)의 단편소설 《날개》를 골랐습니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인 이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시인·소설가·수필가·건축가로 활동한, ‘천재’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문제적 작가입니다.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날개》를 필사하면서 찾아보세요. /편집자 주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를 수석으로 졸업, 건축가로 활동면서 1930년 잡지 《조선(朝鮮)》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필명 ‘이상(李箱)’으로 연재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도 시작했다. 1936년 9월 잡지 《조광(朝光)》 11호에 발표된 《날개》는 1930년대 심리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다.
날개 ① (글자수 849, 공백 제외 638)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 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내, 뜨물내, 비눗내.

(중략)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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