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85) 날개 ④… 한 번만 더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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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05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전위(前衛) 문학가 이상(李箱, 1910~1937)의 단편소설 《날개》를 골랐습니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인 이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시인·소설가·수필가·건축가로 활동한, ‘천재’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문제적 작가입니다.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날개》를 필사하면서 찾아보세요. /편집자 주

작가 이상이 직접 그린 《날개》의 삽화. 작중에 등장하는 약은 ‘아스피린’과 ‘아달린’이지만, 위 그림의 약은 ‘알로날’이다. 외출했다가 감기에 걸린 주인공에게 그의 아내가 아스피린이라며 준 약이 실제로는 수면제 아달린이었다. 한 달간 밤낮없이 잠에 빠져 지내던 주인공은 나중에야 자신이 먹은 약이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달린은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한 약으로, 1950년대 중반까지 인기 있었지만 장시간 사용하면 브롬 중독을 일으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날개 ④ (글자수 772, 공백 제외 582)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 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 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꼭 네 개가 비었다.

(중략)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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