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강석-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두 진행자가 최근 교체됐다. 어떤 짧은 기사를 읽어 보니 배경을 설명하던 MBC 측 누군가의 "팟캐스트를 통해 인기를 끈…"이라는 말에 그 단서가 담겼던 모양이다. 팟캐스트? 스쳐 지나가기 쉬운 아주 작은 변화의 실마리다.

1973년 시작한 고전적인 코너에서 무려 30년 이상 같은 자리 지킨 분들이 갑작스레 퇴장함에서 비롯된 주변 반발감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면 이 상황의 본질은 ‘느긋하고 고답적인’ 아날로그 라디오 방송에 ‘흥미 우선에 재빠른’ 디지털 인터넷이 강한 한 방을 날린 것이다. 극단적 묘사로는 ‘말을 퍼뜨리는 유효한 수단이었던 아날로그 라디오 방송’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더 자유분방한 팟캐스트에 의해 침식당한 또 하나의 사례다.

아날로그 라디오, 모든 방송의 원점

1959년 나온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사 A-501’이 박정희 정권의 ‘농어촌 라디오 보급 운동’으로 상승세를 탔다. 경제성장에 따라 많은 종류, 많은 수의 AM 라디오들이 유통되었다.

1970년 국내 FM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으로 이후 40여 년간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음악과 말과 사연이 어우러진 전설적인 코너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엽서 보내고 읽어주기, 듣고 공감하고 환호하기, 긴장감 속 카세트 녹음하기 그리고 선물하기 등 사람과 FM 방송의 어울림이 다채롭던 시절이었다.

시간 흘러 2008년 아이폰이 열어젖힌 모바일 세상이 왔다. 지난 10여 년간 성장세를 멈추지 않았으며 정치적 대립의 틀 속에서 종종 적극적인 ‘프로퍼겐다’(선전) 수단까지 활용된 팟캐스트가 이 시대의 방송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수신기 대 수 감소와 아울러 무선 전파 송출 없는 방송 매체 대두에 의해 유형물 아날로그 라디오와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는 70년 만에 모종의 변혁기를 만난 셈이다.

‘라디오 보유와 이용행태 변화’, 2p,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7년
‘라디오 보유와 이용행태 변화’, 2p,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7년
아날로그 방송은 사라질 것인가?

변이의 양상은 ‘아날로그-집체형’과 ‘디지털-분산형’ 시스템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수세에 몰린 라디오 방송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매체력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와 무선송출의 기술적 방법론이 어찌 될 것인지 두 가지 관점으로 가늠할 수 있다.

AM은 ‘한민족방송’ 외 특별한 정체성을 갖는 방송이 없다. FM 재방송 또는 동시 방송 위주로 편성됐다. 1980년대에 비해 확실히 가정 내 잡음 원도 많아졌다. 특히, 대북 재밍(Jamming: 적의 전파와 주파수를 탐지해 간섭을 통해 통신체제를 혼란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 전술 때문이라도 가장 많은 이들이 거주하는 수도권 내 청취가 꽤 어려운 형편이다. 가끔 가방에 넣고 다니던 빨간색 AM 라디오를 본 사람들이 살짝 경악하는 정도가 되었다.

FM은 치열하게 생존 싸움을 하는 중이다. 콘텐츠 질은 접어두더라도 FM 방송은 ‘다시 듣기’를 통해 인터넷망으로 재유포하거나 ‘보이는 라디오’라는 특별한 틀을 통해 비주얼과 접목한 형태로 가공한다.
좋게 말하면 아날로그의 트렌드 추종 즉, 전술적 변화이겠다. 다르게 말하면 살아남기 위해 경계선을 넘나드는 고육지책이다.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끝까지 간다면, 적어도 콘텐츠 다양성이나 방송법 등 규제 강도 때문에라도 라디오 방송은 자유로운 분산형 인터넷 방송에 비해 많이 불리하다. 그리하여 "누군가 그러던데… FM도 조만간 아날로그 TV처럼 종료될까요?"라는 질문도 나온다. 지글지글 소리가 좋다고 생각하고 다이얼 돌리는 손맛에 완전히 반한 아날로그 마니아적 시각에서 심각한 고민인 모양이다.

잠시 생각을 더 해보면 전통적인 아날로그 AM은 전시나 재난 상황의 급조형 방송에 강점이 있다. 휴전 상황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어렵게 받은 국제 호출부호를 버릴 이유도 없다. 아날로그 FM은 셀(Cell) 단위 디지털 네트워크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광역 포괄성 측면에서 더 안정성이 높다. 가정집 오디오 뿐만 아니라 1600만 대 자동차 상당수가 아날로그 라디오를 탑재했다. 이런 사실까지 고려하면 아날로그 방송 시스템의 원론적, 하드웨어적 우월성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관성의 법칙’을 따라, 2017년 모든 아날로그 방송을 없앤 노르웨이처럼 강력한 정책 추진을 하지 않는 한 AM과 FM 아날로그 방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송출기술 부문은 양상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이미 아날로그 TV를 디지털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보통은 사용하지 않지만 이 순간에도 FM RDS(Radio Data System)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틀을 빌려 실시간 송출한다. 한쪽에서는 라디오 폐국도 진행되는 상황이다. 배철수 씨가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서 여전히 정성껏 고른 CD로 음악을 들려준다는 ‘팩트’를 강조하는 만큼은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 솔루션 종속화나 그것에 기대는 네트워크 편향 현상이 상당히 진행되는 것도 사실이다.

"It’s the contents, stupid"(콘텐츠야 바보야)

어쨌든 무선 라디오 플랫폼이 당연하게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시절은 진작에 갔다. 1인 방송은 100만 명이 보고 들어도 마음대로인데 하루 몇 만 명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관리 통제를 받는다. 형평성에 어긋남에도 매체 속성이 다르므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남는, 적자생존 세상의 명답은 오로지 ‘콘텐츠’뿐이다.

청취 시간대를 정확하게 선정했으며 내용까지 특별한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하겠다. 생각과 말이 재미난 김신영 씨나 작가들의 역량에 더하여 다루는 소재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

구현 방법론에 있어 A/V(오디오/비디오)에서 A가 V로만 갈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연주곡들처럼 V에서 A로 가는 게 나올 수도 있다. 자막만 잔뜩 있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요즘 TV 프로그램들의 역(逆)도 있겠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종국에는 온라인과 1% 다른 배타성 유지와 굳건한 콘텐츠 소비자 층 확보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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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수 칼럼니스트는 IT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한다.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빈티지 오디오 콘텐츠 사이트, 오디오퍼브에 다양한 오디오 관련 글들을 기고한다. 출간 저서로는 <내차 요모조모 돌보기>가 있다. audiopub@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