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95)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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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17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고전을 월·화요일과 목·금요일에 연속 게재하고, 수요일에는 짧으나 깊은 공감을 주는 콘텐츠를 골라 제시함으로써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은 18일과 19일 3·4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신유옥사(辛酉獄事)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떠난 1801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골랐습니다. 외롭고 고된 유배생활 중 가족들의 안부에 애달파하고 아들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1979년 처음 출판된 이후 40주년을 맞아 개정3판을 낸 박석무 선생의 정약용 서간문 편역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참조했습니다. /편집자 주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옥사(1801) 당시 서울에 머물고 있던 다산은 2월 8일 사간원에서 임금에게 올린 계(啓)로 인해 그다음 날 새벽에 잡혀가 19일 동안 문초를 받고 27일 밤 감옥에서 나와 28일 귀양길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에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11월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된다. 이 귀양살이는 1818년까지 이어지는데 다산의 나이로는 40세부터 57세에 이르는 세월이다. 왼쪽은 다산의 모습을 그린 국가표준영정, 오른쪽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2019, 창비) 표지.
선비의 마음씨를 가져라 (글자수 517, 공백 제외 398)

날짜를 헤아려봤더니 지난번 편지를 받은 지 82일 만에 너희들 편지를 받았더구나. 그사이에 내 턱밑에 준치 가시 같은 하얀 수염 일고여덟 개가 자라났다. 네 어머니가 병이 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큰며느리까지 학질을 앓았다니 더욱 초췌해졌을 얼굴을 생각하면 애가 타 견딜 수 없구나.

더구나 신지도(薪智島)에서 귀양살이하는 형님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반년간이나 소식이 깜깜하니 어디 한세상에 같이 살아 있다고 하겠느냐. 나는 육지에서 생활해도 괴로움이 이러한데 머나먼 섬 생활이야 오죽할까. 형수님의 정경 또한 측은하기만 하구나. 너희는 그분을 어머니같이 섬기고 사촌동생 육가(六哥)를 친동생처럼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펴주거라.

내가 밤낮으로 빌고 원하는 것은 오직 문장(文牂)이 열심히 독서하는 일뿐이다. 문장이 능히 선비의 마음씨를 갖게 된다면야 내가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어깨가 저려서 다 쓰지 못하고 이만 줄인다.

- 1801년 9월 3일

* 어휘 풀이
- 형님 : 정약전(丁若銓, 1758~1816). 조선 후기의 학자, 다산의 둘째 형으로 병조좌랑을 지냈다. 1801년 신유옥사 때 신지도로 귀양 갔다가 흑산도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현산어보》(玆山魚譜)를 지었다.
- 육가 : 정약전의 아들 정학초(丁學樵, 1791~1807)의 아명. 다산은 이 조카가 요절하자 몹시 슬퍼하며 묘지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 문장 :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의 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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