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증거 개시 제도(eDiscovery)를 도입하고 법원 판결문을 공개해,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심재훈 미국 변호사는 IT조선을 만나 빅데이터 부족과 각종 규제가 리걸테크 발전을 막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저작권 위원회 위원이자 워싱턴·메릴랜드주 변호사인 심 변호사에게 한국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무엇인지 들었다.

 심재훈 미국 변호사 / 김동진 기자
심재훈 미국 변호사 / 김동진 기자
―리걸테크를 접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워싱턴과 메릴랜드주 변호사로서 여러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일하며 미국 리걸테크를 접했다.

월트 디즈니와 콜롬비아 픽쳐스, 이십세기 폭스사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와 일하며 디지털 저작권 보호와 관련한 메타 데이터(Meta Data) 보존, 디지털 콘텐츠 자동 인식 및 판독 기술에도 익숙하게 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과 2018년 성균관대학교 법학관에서 과학수사학과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리걸테크와 전자 증거 개시 수업을 개설, 초빙교수로서 강의했다.

카이스트 지식재산권 대학원(MIP 과정)에서도 글로벌 지식재산권 관리·협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 올해부터 지식재산권 소송의 전자 증거 개시 과정에 리걸테크를 접목해 강의하고 있다.

전자 증거 개시는 이메일과 같은 전자 문서나 자료를 법정 증거로 내보이는 것으로 변론기일 전 진행하는 사실 확인 및 증거수집 절차다. 미국과 영국 등에 도입된 제도다.

―리걸테크 세부 분야를 구분한다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B2B(Business to Business) 분야다. AI에 기반해 변호사들의 소송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리걸테크 기업이 로펌이나 법률회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방대한 전자문서와 데이터 안에서 소송에 필요한 정보만을 신속·정확하게 추려 변호사들에게 보고하는 기술(Predictive Coding Technology)’이 그 예다. 미국과 캐나다, 이스라엘 리걸테크 회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이 기술은 시장 경쟁을 통해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두 번째는 AI 기반으로 클라이언트(Client, 법률 서비스 수요자)에 법률 상담을 해주는 B2C(Business to Consumer) 영역이다. 챗봇과 같은 AI 법률 상담 시스템을 말한다.

세 번째는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역이다. 예컨대 승소 확률을 예측해주거나 적정 합의금 또는 손해배상액 범위를 예측하는 시스템, 특정재판부나 상대측 변호사 또는 특정 배심원을 분석해 주는 시스템, 재판 담당 판사 성향과 과거 판결을 분석해주는 방식의 법률 서비스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렉스 마키나(Lex Machina)가 빅데이터 분석 기반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업이다.

―한국 리걸테크 산업과 선진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 리걸테크 산업과 외국 리걸테크 산업의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전자 증거 개시 제도가 없다는 점과 법원 판결문을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 다양한 규제들이 리걸테크 발전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세 가지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우리나라는 리걸테크 강국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녔다.

한국은 어렸을 때부터 포털사이트를 능숙하게 써 검색엔진 활용에 익숙하고 온라인·모바일 게임 활용이 일상 문화인 국가다. 리걸테크 산업 경쟁력을 이끌 수 있는 디지털 포렌식, 스마트폰 활용, 사용자 친화적 기술 개발, 빅데이터 활용 인재 등을 배출하고 있다.

수출과 무역으로 성장하는 산업구조와 경제를 지녀 무역 분쟁과 관련 기업 간 국제 분쟁, 소송, 계약들에 대한 수요 또한 크다. 충분한 내수시장 수요(국내 분쟁, 계약 및 소송 수요)와 해외시장 수요(수출과 무역에서 발생하는 분쟁, 계약 및 소송 수요)가 있기 때문에 리걸테크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한국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민사소송에 ‘전자 증거 개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해당 제도는 이미 미국 영국 등 리걸테크 선진국에 도입됐다. 전자 문서의 경우 변형 가능성이 높아 디지털 증거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필수다. 과거와 달리 문서 양이 많고 형태도 다양해 전자 증거 개시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 제도를 도입하면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 한국 리걸테크 회사들이 진출해 새로운 수출 활로를 열 것이라 확신한다.

민감한 개인정보 삭제를 전제로 법원 판결문도 전면 공개해야 한다.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반도체 없는 전자산업 성장을 기대할 수 없듯, ‘빅데이터’ 접근성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리걸테크 산업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막고 있는 ‘규제’에 대한 완화·철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리걸테크가 향후 한국 법률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리걸테크가 기존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 전자계산기가 처음 소개됐을 때 회계사란 직업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현실은 회계사 업무와 서비스가 개선됐다. 리걸테크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리걸테크는 한국 법률시장을 확대할 것이다. 예컨대 지급 명령 신청을 하고자 했으나, 높은 변호사 수임료에 부담을 느껴 포기했던 수많은 잠재 수요자들을 끌어당길 것이다. 리걸테크를 활용하면 기존 변호사 수임료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걸테크 분야에서 향후 어떤 활동을 펼칠 예정인가?

한국 수출기업들이 리걸테크에 낯설고 전자 증거 개시 제도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국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외국기업에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지불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수출기업들의 국제 분쟁 해결 능력을 제고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가 리걸테크 글로벌 경쟁력 제고이기도 하다.

국제소송들을 돌이켜 보면 미국과 영국, 캐나다 법조계들은 이미 AI를 활용한 ‘리걸테크’라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해 각종 국제 분쟁에서 승소율을 대폭 향상하고 있다. 반면 한국 법조계는 아직도 20세기 고전 무기들로 국제무대에서 외국 법조계와 싸우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글로벌 리걸테크와 전자 증거 개시 시장을 석권하는 그날까지 인재 양성에 주력할 것이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